[[파일:호암 금동관.jpg]] [[https://m.chosun.com/svc/article.html?sname=news&contid=1999082670380#Redyho|사진 출처 : 조선일보 "국보급 신라 금동관 파손"]] [목차] == 개요 == 5세기 경 [[신라]]에서 제작된 [[한국]]의 금동관. 원래 [[호암미술관]]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[[삼성미술관 리움]]으로 이관된 상태다. == 내용 == 전체 높이 20.6㎝. 지금으로부터 1,600여년 전 [[신라]]에서 제작된 한국의 금동관이다. 출(出)자형 입식 3개와 [[하트]]형 장식 두 개를 늘어뜨렸으며, 한국에서 그동안 발견된 금동관 중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나 장식성이 빼어난 국보급 문화재로 평가받았다. == 파손 사건 == 1998년 [[국립중앙박물관]](당시 관장 정양모)이 민관박물관 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호암미술관으로부터 금동관을 대여받아 [[미국]] [[메트로폴리탄 박물관]] 한국실 개관 특별기념전에 이 유물을 내놓았다가 관리상의 실수로 박살이 났다. 그리고 이 당시 금동관의 이송을 책임졌던 [[국립중앙박물관]]은 사건이 벌어지자 이를 은폐하다가 걸리는 [[막장]] 상황이 벌어졌었다. 훗날 2013년에 다시 [[미국]] 뉴욕 [[메트로폴리탄 박물관]]과 [[국립중앙박물관]]이 [[반가사유상|금동미륵반가사유상]] 등 국보 12점, 보물 14점을 포함하는 특별기획전 ‘황금의 나라, [[신라]]’전을 열기로 계약을 맺자, 전국의 수많은 학자, 연구자, 전문가들이 이 때의 사건을 거론하며 전시회를 거세게 반대하는 등 십수년이 지난 후에도 [[한국]] 고고학계와 역사학계에는 크나큰 충격과 아픔으로 남아있다.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3&oid=028&aid=0002187659|한겨레 :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‘국보83호’ 뉴욕 가나 못가나]],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004&oid=028&aid=0002188273|한겨레 : [논쟁] 국보 83호 뉴욕 나들이 괜찮나]],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10&oid=009&aid=0002958052|매일경제 : [世智園] 國寶 뉴욕 나들이]], [[https://blog.naver.com/woorikangsan/20193682713|명분 잃은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미국행 - 문화재청, 반가사유상 반출 금지 왜 번복했나]] 최초 [[문화재청]]은 이 사건의 내막에 대해 알게된 후 학계 및 전문가들의 반대 의견에 동의했었으나, 결국 문체부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압박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국외 전시를 허용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었다. 하지만 [[도기 기마인물형 명기]]와 [[토우장식 장경호]]는 시민들의 반대로 끝내 전시회에 나가지 못했다. 이는 한국 역사인들에게 이 금동관 파손 사건이 얼마나 큰 [[트라우마]]인지를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. 국가에 유물을 빌려주었다가 호되게 데인 호암미술관은 이때 이후로 금동관을 철저히 외부에 보이지 않고 있다. 때문에 오랫동안 이 금동관을 찍은 사진은 전시회 출발 당시 찍었던 저 위의 사진 1점 뿐이었다. [[파일:호암 금동관1.jpg]] 본 금동관이 [[호암미술관]]에서 [[삼성미술관 리움]]으로 이관된 후에는 다시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있다.[* 두 미술관 모두 [[삼성그룹]] 소유라 가능한 일이다.] [[분류:신라의 금제유물]][[분류:호암미술관 소장품]][[분류: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]][[분류:문화재 사건사고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