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Luftwaffe ace Horst Ademeit color.jpg]] '''Horst Ademeit''' (1912년 2월 8일~1944년 8월 7일) [include(틀:2차 세계대전/전투기 에이스 21~30위)] [[독일 공군]]에서 복무한 전투기 조종사로, [[제2차 세계 대전]] 동안 공중전에서 세운 혁혁한 무공으로 [[철십자 훈장|곡엽기사철십자장]]을 수여받은 군인. == 청년기 == 지금은 [[폴란드]] 영토가 된 [[브레슬라우]]에서 건축 감독관의 자식으로 태어난 호르스트 아데마이트는 [[쾨니히스베르크]]에 있는 알버티나 대학(Königsberg Albertina University)에서 화학을 전공했다. 아데마이트는 엔지니어 자격증까지 따며 학업에 열중하기도 했지만, 전쟁 전에 비행술도 배워놓았던 탓에 1936년 8월 1일에 공군에 입대하여 [[전투조종사]]가 되었다. == 실전에서 == 1940년 봄, 아데마이트는 3./JG 54에 배속되어 [[영국 본토 항공전]]에 참가하여 영연방 파일럿들과 연일 혈투를 벌였다. 아데마이트는 1940년 9월 18일의 교전에서 [[스핏파이어]]에게 격추되어 [[도버 해협]]에 추락했으나, 아군의 구난기(Seenotdienst)에 의해 무사히 구조되었다.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고 멀쩡하게 기지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격추당한 그 교전에서 첫 번째 격추를 기록했다고 주장했다. 1941년 6월에 [[독일]]이 [[소련]]을 침공하자, 아데마이트는 [[동부전선]]으로 전진 배치된 I./JG54에 배속되어 격추 기록을 이어 나갔고, 1944년 8월 초에는 JG 54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. 1944년 8월 7일, 아데마이트는 [[Fw 190]]A-5를 몰고 소련 공군의 [[IL-2]] 슈톨모빅 공격기를 쫓다가 [[뒤나부르크]](Dünaburg)의 소련군 점령지를 넘어 동쪽으로 계속 비행했다. 그러나, 이 임무를 마지막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는 전투 중 행방불명된 것으로 상부에 보고되었지만, 아마도 살아남지는 못했을 것으로 판단된다. 호르스트 아데마이트는 그때까지 600회의 실전 출력을 계속하면서 166대를 격추하는 기록을 세웠고, 그중에서 2기를 제외한 164대는 모두 동부전선에서 세운 것이었다. == 서훈 == 독일 공군 명예컵 (1941년 12월 8일) 황금 독일 십자장 (1942년 2월 25일) 철십자훈장 1급 및 2급 기사철십자장 (1943년 4월 16일) 곡엽 기사철십자장 (1944년 3월 2일) [[분류:에이스 파일럿]][[분류:제2차 세계 대전/군인]] [[분류:1912년 출생]][[분류:1944년 사망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