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해군사관학교장)] [[파일:external/tyrokm.com/3.jpg|width=300]] 玄時學 1924년 1월 3일 ∼ 1989년 7월 18일 [[대한민국]]의 [[군인]]. [[1924년]] [[1월 3일]] [[함경남도]] [[함흥시|함흥]]에서 태어났다. 함흥 소재의 [[중학교|영생중학교]]를 [[졸업]]할 당시, [[광복]]을 맞이하게 되자 이듬해 월남하여 [[해군|해군병학교]](해군사관학교) 1기로 임관했다. 형제도 유명한데, [[흥남 철수]]에서 활동하였고, [[장기려]]의 제자인 [[현봉학]] 박사와 민중신학자로 [[윤치호]] 사위이기도 한 [[현영학]] 목사가 있다. [[6.25 전쟁]]이 발발할 당시 각종 대형,소형 작전에 참여하면서 커다란 [[공]]을 세우기도 하였다. 1950년 7월 첫 번째로 참전했던 [[서해]]안 봉쇄작전에서는 신병 70명을 출동 중에 훈련시켜 남하하고 있던 12척의 적 수송선단을 격퇴했다. 또한 [[통영시|통영]]작전에서는 [[선박|배]]로 [[고성군(강원도)|고성]](강원도)에서 통영으로 진출하려는 적을 맞아 백발백중의 함포사격으로 [[해병대]]의 통영상륙작전을 지원함으로써 [[낙동강]] 최후 방어선을 수호했다. 이로인해 [[경남]]지방은 3년간 전쟁피해가 거의 없었다. [[목포항]] 소해작전 때는 [[북한]]이 설치한 [[기뢰]]를 제거하였고, [[원산시|원산]]만 소해작전 때는 3,000여 개 [[기뢰]]를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. [[황해도]] 피난민 구출작전도 수행하여 6만 여명의 피난민을 구출하는 데 기여하였다. [[6.25 전쟁]]이 끝난 후에는 1전단사령관과 함대사령관, [[해군사관학교]] [[교장]] 등 해군 주요직을 맡았다. 1969년부터 [[모로코]] 대사, [[이란]] 대사, [[멕시코]] 대사로 자리하여 외교가로도 활동하였다. [[1989년]], [[질병|지병]]으로 [[별세]]했다. [[향년]] 66세. [[분류:대한민국의 군인]][[분류:실향민]][[분류:함흥시 출신 인물]][[분류:1924년 출생]][[분류:1989년 사망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