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조선의 왕녀/익조 ~ 연산군)] ||<-3><tablealign=right><tablewidth=400><tablebordercolor=#94153e><tablebgcolor=#fff,#1f2023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7px 10px 5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right, #94153e 0%, #94153e 20%, #94153e 80%, #94153e)" '''{{{#ffd400 조선 예종의 왕녀[br]{{{+1 현숙공주 | 顯肅公主}}}}}}'''}}} || ||<|2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출생}}}''' ||<-2>[[1464년]]^^([[세조(조선)|세조]] 10년)^^ || ||<-2>장소 불명 || ||<|2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사망}}}''' ||<-2>[[1502년]]^^([[연산군]] 8년)^^ [[5월 18일]][br]{{{-2 (향년 39세)}}} || ||<-2>장소 불명 || ||<width=50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부왕}}}''' ||<-2>[[예종(조선)|예종]] || ||<width=50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모후}}}''' ||<-2>[[안순왕후|안순왕후 한씨]] || ||<width=50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부군}}}''' ||<-2>풍천위 임광재[* 본관은 풍천(豊川)이다. ]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[[조선]] [[예종(조선)|예종]]과 [[안순왕후]]의 적장녀. [[이복형제|이복오빠]]는 [[인성대군]]이고, [[동복형제|동복동생]]이 [[제안대군]]이다. 그리고 [[월산대군]]과 [[성종(조선)|성종]]은 사촌이 된다. 아버지 예종은 현숙공주의 나이 6세에 승하하였고, [[임사홍]]의 아들 임광재와 혼인하였지만 슬하에 자녀는 없다. == 독살 자작극 == 남편은 풍천위(豊川尉) 임광재(任光載)로, [[임사홍]]의 차남이다. [[성종(조선)|성종]]은 [[예종(조선)|예종]]의 적통 장자인 [[제안대군]]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두 남매에게 잘 대해 주었다고 한다. 그러나 그게 지나쳤는지 자작극을 만들 정도였다. 어느날 현숙공주의 여종이 공주의 모후인 [[안순왕후]]에게 현숙공주의 [[유모]]와 그 아들, 그리고 보모가 공주를 독살하려 했다고 보고했다. 당연히 궁은 발칵 뒤집혀서 [[안순왕후]]와 [[성종(조선)|성종]]은 용의자들을 국문했지만 그들은 혐의를 부인했다. 그래서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, [[성종(조선)|성종]]은 [[부마]]가 현숙공주가 독살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생각하고, 부마가 양갓집 규수를 [[첩]]으로 둔 적이 있었는데, 그에 대해 잘 이야기하면 풀어주겠다고 회유했다. 이후 부마가 양첩을 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마가 귀양을 가고 현숙공주의 유모 등이 부마에게 회유되어 저지른 사건이라고 일단락내렸다. === 사건의 진실은? === 그러나 [[조선왕조실록]]에는 남편의 외도를 질투한 현숙공주의 자작극이라고 기록되어있다. 조선왕조실록에는 "현숙공주는 투기하고 사나워 임광재를 공경하지 않고 원망하였다. 그래서 보모와 유모가 직언한 걸 되려 원망하여 이와 같은 자작극을 벌였다. 그리하여 억울하게 죽은 자가 7명 ~ 8명이나 되니, 그 참혹감을 차마 말할 수가 없다"라고 기록되어 있다. 게다가 조정 대신들은 남편을 공경하지 않고 마중 나가지 않은 현숙공주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. === 사건 이후 === 결국 공주는 평생 슬하에 자녀없이 연산군 8년에 사망했다. 임광재보다 8년정도 오래 살았다 [[분류:조선의 공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