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<:><tablealign=right> '''구장명''' || 헤이와다이 야구장(平和台野球場) || ||<:> '''소재지''' || [[후쿠오카]] 현 후쿠오카 시 주오구 성내 1-2 || ||<:> '''홈구단''' || 니시니폰 파이리츠(1950)[br][[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|니시테츠 - 타이헤이요 클럽 -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]](1950~1978)[br][[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]](1989~1992) || ||<:> '''개장일''' || [[1949년]] [[12월 18일]] || ||<:> '''폐장일''' || [[1997년]] [[11월 24일]] || ||<:> '''좌석수''' || 34,000명 || ||<:> '''크기''' || 좌우 92m[br]중앙 122m || [[파일:external/57fabe5171157be3ff106cc78d7fe2da89999da721586e53172533145f7b9469.jpg]] [[파일:external/www.aa.cyberhome.ne.jp/heiwadai2.jpg]] [목차] == 소개 == [[후쿠오카시]]에 위치한 야구장으로, 과거 [[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|니시테츠 - 타이헤이요 클럽 -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]]의 홈구장으로 쓰였으나 1979년 구단이 [[세이부]]에게 매각되어 [[사이타마]]로 연고이전 한 뒤 지방경기 용도로 쓰이다가 5~60년대 라이온즈와 퍼시픽리그 우승을 다투던 라이벌 [[난카이 호크스]]가 다이에에게 인수된 뒤 오사카에서 후쿠오카로 연고이전하면서 이 구장을 사용했다. == 역사 == 구 [[일본 육군]] 부대 부지에 건설됐으며 1950년에 [[일본프로야구]]에 참가하기 시작한 니시테츠 클리퍼스(퍼시픽리그)와 니시니폰 파이리츠(센트럴리그)가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. 이듬해인 1951년에 두 팀이 합병해서 니시테츠 라이온즈(퍼시픽리그)로 다시 출범했으며 이 구장을 계속 홈구장으로 삼았다. 개장 당시에는 조명시설이 없었으나 1954년에 조명시설을 설치했다. 1953년 8월 29일, 강타자 [[나카니시 후토시]]가 헤이와다이 구장의 백스크린을 훨씬 넘는 비거리 160미터(추정)의 홈런을날린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. 니시테츠는 [[토요다 야스미츠]], [[오시타 히로시]], [[이나오 가즈히사]], [[오기 아키라]] 등 투-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1956~1958년 [[일본시리즈]] 3연패를 달성했다. 특히 1958년은 3연패 후 4연승을 거두며 리버스 스윕을 달성했다. 이후 개축 공사를 실시하여 잔디 좌석에 모두 스탠드를 설치했다. 1958년 [[일본시리즈]]에서 이나오가 맹활약했는데 어느 팬은 구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며 '하나님, 부처님, 이나오님'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.[[http://yaq.khan.kr/14|#]] 그러나 1963년 니시테츠 시대 마지막 우승 이후(일본시리즈에선 [[교진군]]에게 패배) 점점 팀은 약체화되었으며, 결정적으로 1969년에 터진 [[검은 안개 사건]]에 의해 니시테츠 라이온즈 팀의 많은 선수들이 영구제명 등의 처분을 받은 계기로 팀이 개발살나면서 결국 모기업이던 [[니시테츠]]는 1972년 구단 운영을 포기해버린다. 그 뒤 1973년 전 [[롯데 오리온즈]] 구단 소유자 나카무라 나가요시가 구단을 인수했고 [[명명권]] 판매 방식으로 타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(1973~1976년), 크라운 라이터 라이온즈(1977~1978년)이란 이름으로 팀명을 바꿔가며 계속 존속해왔지만 명명권+나카무라의 사재로 운영되는 팀 경영엔 한계가 많았고, 성적 하락 및 관중수 감소 및 수익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. 결국 1978년 라이온즈 구단이 [[세이부]] 그룹에 인수되어 [[사이타마]]의 도코로자와로 떠나 버렸고, 후쿠오카 팬들은 연고팀을 잃은 상실감에 빠졌다. 1979년에는 천연잔디를 인조잔디로 교체하는 공사를 진행했다. 이후 연고팀은 없지만 프로야구 지방경기 용도로 주로 쓰였고, 니시테츠를 상징하는 에이스 [[이나오 카즈히사]]가 1984년 [[롯데 오리온즈]] 감독으로 취임 시 내건 조건은 미래에 홈구장을 당시의 [[가와사키 구장]]에서 이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었다고 한다. 그러나 이 조건은 1986년 이나오가 성적 부진으로 해임되고 1991년 롯데가 [[치바 롯데 마린즈]]로 이름을 바꾸고 [[치바]]로 연고이전하며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. 1988년 9월, 난카이 호크스가 다이에에 인수되면서 [[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]]로 구단명을 바꾸고 [[후쿠오카]]로 이전하면서 홈구장을 [[오사카 구장]]에서 이 곳으로 옮겨왔다.[* 연고이전한 이후 1990년엔 스코어보드 좌측 옆에 그 전엔 없던 대형 스크린화면까지 설치했다. 하지만 고작 3년간인 1992년까지만 사용되었고, 이후 호크스가 후쿠오카 돔으로 이전하면서 이 스크린화면은 다시 철거되었다.] 그 후 1993년 [[후쿠오카 돔]]이 완성되기 전까지 사용했다. == 철거 == 1987년 말 [[신라]], [[당(통일왕조)|당]]의 사신을 접대했던 고대 유적 코로칸(鴻臚館)의 유적이 구장의 보수 공사 중에 발견되었다. 유적 발굴 추진과 동시에 이 곳을 역사 공원으로 재정비할 계획을 수립했다. 1992년을 끝으로 다이에 호크스가 무려 자비를 때려박아가며 후쿠오카 돔으로 홈구장을 바꾸며[* 소프트뱅크가 구단인수때 천문학적인 인수비용을 치뤘는데 후쿠오카 돔까지 매입했기 때문이다. 그 덕분에 '''임대료가 0원'''이라서 12개 구단중 '''흑자 1위구단'''이 되었다.] 프로야구 경기가 더 이상 치뤄지는 일은 없었으며, 그 이후로 [[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|고시엔]] 후쿠오카 지역 예선 경기에 사용되다가 1997년에 완전 폐쇄 후 외야쪽만 남기고 철거됐다. 외야쪽 부분은 2000년대까지 남아있다가 2005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붕괴의 위험성이 대두되어 2007년 12월 ~ 2008년 4월에 철거를 완료,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. 현재 이 구장 부지에는 코로칸 유적 안내문이 세워져 있으며, 근처에 니시테츠 OB 선수들이 세운 기념비가 남아있다(2002년 건립). == 여담 == [[나카니시 후토시]]가 술회하길 "그라운드의 흙이 배수가 잘 돼서 수비하기 쉬웠다. 그러나 벤치에는 악취가 풍겼다. 시에서 구장을 관리해서 마음대로 개조할 수 없고, 탈의실과 목욕탕이 생긴 것은 일본시리즈 3연패 그 뒤였다. 그래도 전국에서 처음으로 우천 연습장을 만든 것은 [[미하라 오사무]]감독님이다. 지금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을 제일 먼저 시작한 건 니시테츠였으며 미하라 감독님이었다"라고 했다. [[이나오 가즈히사]]감독과 [[가네다 마사이치]]감독이 짜고 연출한 원한 게임(일명 "하카타에는 피의 비가 내린다")의 장소였다. 실제로 이 두 감독은 사이가 좋아 사전에 협조를 요청하여 연출한 것인데 이를 모르는 팬들을 자극하여 양 팀 팬덤의 충돌을 빚어내고 말았다. 라이온스 외골수로 통산 251승을 기록한 투수 [[히가시오 오사무]]는 "헤이와다이 시절에 피칭한 기쁨이 더 컸다.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있다"고 추억했다. [[분류:일본프로야구]] [[분류:후쿠오카시]] [[분류:일본의 야구장]] [[분류:일본의 없어진 건축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