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Bachnick, Herbert - Leutnant.jpg]] [[분류:만하임 출신 인물]] [[분류:1920년 출생]][[분류:1944년 사망]] '''헤르베르트 바흐니크(Herbert Bachnick : 1920년 2월 9일~1944년 8월 7일)''' [목차] == 공군 입대와 참전 == [[철십자 훈장|기사철십자훈장]]을 수상한 [[에이스]] 파일럿 헤르베르트 바흐니크는 [[1920년]] 2월 9일에 [[바이마르 공화국]]의 [[만하임]]에서 태어났다. 장성한 후에 [[독일 공군]]에 입대한 헤르베르트는 [[1942년]] 12월에 [[러시아]]에서 한창 전투하고 있던 제52전투항공단([[JG 52]]) 예하 제9비행중대에 배속되어 [[독소전]]의 한복판에 내던져 졌다. [[나치 독일]]이 [[소련]]을 침공한지 반년이 지났지만 이 시기의 소련 공군은 아직 개전 초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데다 떼죽음 당한 [[조종사]]들을 충분히 보충하지 못하고 있어서 신참인 헤르베르트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. 항공단에서 그는 슈밤 편대의 4호기 막내로 지정되어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윙맨을 맡아 따라다니면서 전투와 격추를 지켜보았다. == 독소전 == 헤르베르트 바흐니크가 처음으로 적기를 확인 격추시킨 날은 [[1943년]] 7월 5일이었다. [[1944년]] 4월에 바흐니크는 제2동부 예비전투비행단으로 옮겨졌고, 5월에는 전시 진급 대상자가 되어 소위로 승진해 제2비행중대를 지휘하게 된다. 7월 7일에는 처음으로 미 육군 항공군(USAAF)의 [[전투기]]와 근접 공중전을 벌였으나 타고 있던 [[Bf 109]]G-6에 고장으로 동체 착륙을 해야만 했고, 그 와중에서 부상을 당했다. == 서부전선 == 그로부터 약 보름 후인 7월 27일에는 격추수 79기의 무공을 인정받아 기사철십자훈장을 받았다. [[교관]] 생활에서 벗어나게 된 그는 다시 자신의 첫 자대였던 JG 52의 9중대로 돌아갔다. 바흐니크는 1944년 8월 7일에 또다시 미군기와 교전을 펼쳐 1기의 머스탱을 격추시켰지만 또다른 [[P-51]]에게 역습을 받고 자신도 격추되었다. 바흐니크 소위는 고장난 Bf 109G-6(W.Nr. 166065) 겔베 퓌어를 달래가면서 불시착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여 사망하고 말았다. == 서훈 == 파일럿 기장 공군 최전선비행 금장 (1943. 7. 31) 2급 [[철십자 훈장]] (1943. 8. 6) 1급 철십자 훈장 (1943. 9. 7) 공군 명예컵 (1943. 12. 13) [[독일 십자훈장|독일 황금 십자장]] (1944. 2. 5) 기사철십자 훈장 (1944. 7. 27) [include(틀:2차 세계대전/전투기 에이스 142~177위)] [[분류:에이스 파일럿]][[분류:제2차 세계 대전/군인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