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<table width=100%><table align=center><table bordercolor=#000000><-100><: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7px 10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right, #C60C30 20%, #003478)" {{{#FFFFFF ''' 허장강의 주요 수상 이력 ''' }}} }}} |||| ||<#ffffff><-100> {{{#!folding [ 펼치기 · 접기 ] ---- ||<-5><#c0c000><tablewidth=100%><tablebordercolor=#c0c000> {{{+1 '''[[백상예술대상|[[파일:백상예술대상_로고.png|width=100]]]]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'''}}} || || [[최무룡]][br](1971) || → ||<#FFFFA1> '''허장강[br](1972)''' || → || [[남궁원]][br](1973) || }}} || ||||<table align=right><table bordercolor=#878787><table width=350><-2> [[파일:배우 허장강.jpg|width=100%]] || || '''본명''' ||허장현 (許長顯)|| ||<|2> '''출생''' ||[[1925년]] [[5월 9일]]|| ||[[경기도]] [[고양군]] [[뚝섬|둑도면]][br](現 [[서울특별시]] [[성동구]] [[성수동]])|| ||<|2> '''사망''' ||[[1975년]] [[9월 21일]] (향년 50세)|| ||[[서울특별시]] [[중구(서울)|중구]] [[을지로|을지로6가]] [[국립중앙의료원|국립의료원]]|| || '''학력''' ||[[다치사마항공학교]]|| || '''가족''' ||[[아들]] 허기호[* 1952년 3월 28일생 직업 영화배우이다.], [[허준호]][* 여담으로 이 둘은 [[동복형제]]가 아니라 [[이복형제]]이다.]|| || '''데뷔''' ||[[1944년]]에 연극 배우로 데뷔|| || '''종교''' ||[[무종교]]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>'''"마담,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?"'''[* 현대에도 코메디나 [[드라마]] 등에서 자주 튀어나오는 유명한 대사인데, 원조가 바로 허장강.] [[대한민국]]의 [[배우]]. 본명은 허장현. 선술하였듯이 본업은 외모가 필수 요소인 배우이나, 정작 배우 치고는 전혀 잘생기지 않은 얼굴[* 짙은 [[눈썹]]과 큼직한 이목구비로 매끈한 [[미남]]형은 절대 아니지만, 어쨌든 [[남자]]답게 생긴 것은 맞다.]로 [[희극]]적인 역할이나 [[악역]]을 자주 맡았지만, 그 외에도 평범한 [[소시민]], [[카리스마]] 있는 [[기자]] 등 매우 다양한 역할을 커리어 내내 훌륭하게 소화했다. [[터프가이]], 성격파 배우 등으로 분류할 수가 있겠다. 활동 당시에는 [[한국]]의 [[험프리 보가트]]라고 불리기도[* [[1960년대|60]] - [[1970년대|70년대]] 당시에는 [[남궁원]]이 [[그레고리 펙]], [[최무룡]]이 [[리처드 버튼]], [[신성일]]이 [[알랭 들롱]]에 비교되곤 했다. 그리고 이 셋은 외모도 각각 펙, 버튼, 들롱을 연상시켜서 그렇지만, 사생활적으로 많이 닮았다. 모범적인 가장이었던 그레고리 펙처럼 남궁원 역시 자녀들을 [[유학]]까지 보낼 정도로 열심히 키운 훌륭한 아버지여다. 반면에, [[엘리자베스 테일러]]와 [[불륜]]([[간통]])을 저질러서 본처와 [[이혼]] 후 [[재혼]]했다를 반복한 리처드 버튼처럼 최무룡 역시 당대 최고의 여배우 [[김지미]]와 간통해서 본처 강효실과 이혼한 이후에 결국 김지미와도 이혼을 한 나쁜 케이스였다. 또한, 온갖 [[여자]]들과 염문을 뿌리며 [[사생아]]까지 낳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다소 지저분한 [[사생활]]로 많은 욕을 들어먹은 알랭 들롱과 마찬가지로 [[신성일]] 역시 숱한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노년에는 자랑이랍시고 그 여자들을 등장시키는 책이나 쓰는 바람에 죽을 때까지 온갖 욕을 푸짐하게 먹었다.]... 김승호, [[장동휘]], [[박노식(1930)|박노식]] 등과 함께 국민 중에 [[이름]]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당대의 대배우였지만, 어쨌든 단독 [[주인공]] 역할을 맡은 적은 그리 많지 않아서, 아래 수상경력만 보더라도 대개 남우 조연상이다. 게다가 [[김승호]][* 배우 [[김희라]]의 아버지이다.]와 함께 후시녹음 시절 [[본인]]이 연기한 [[영화]]마다 본인의 [[목소리]]를 꼭 녹음하는 소위 '양심파'였다[* 동시대 신성일 같은 배우는 사실 거의 전부 성우들의 연기로 빛이 난 케이스다. 그가 나중에 나이가 먹고 본인 목소리로 연기한 작품들을 보고 '저런 대배우의 연기력이 이렇게나 형편없었다니!'라며 충격을 받는 사람들이 속출할 지경.][* 신성일의 경우에는 심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 때문에 본인 목소리를 쓸 수가 없기도 했다.]. 두 아들 허기호, 허준호 등도 모두 배우로, [[허준호]]는 아버지처럼 단독 주연급은 아니나 카리스마 넘치는 역을 자주 맡는 성격배우로 유명하다. 허기호는 그리 유명하지 않다. 허장강이 굉장히 무서운 인상의 얼굴인데 허준호 역시 그런 무서운 인상을 물려받았다. 그런데 [[1975년]] [[9월 21일]], [[동대문운동장]]에서 열린 [[연예인]] [[축구]] 대회 참가 도중 갑작스런 [[심장마비]]로 별세했다. 당시 [[TV]]에 중계되고 있어서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많았다.[* 이 사건은 당시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데, 오랜 촬영 일정으로 심신이 지쳐 있는 허장강을 무리하게 행사에 침여시킨데다 체육 행사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의료진이 전혀 배치되어 있지 않아 허장강이 쓰려졌을 때 후배 배우들이 서투르게 심폐소생술을 했고, 인근 [[국립중앙의료원|국립의료원]]으로 이송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지체되어 결국 허장강은 깨어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마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. 이후 수십년 후에 [[일요일은 101% 장정진 사망 사건|이와 매우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었다]].] == 출연작 == === 영화 출연작 === * 1954년 아리랑 * 1955년 [[피아골#s-2|피아골]] * 1956년 격퇴 * 1957년 노들 강변 * 1958년 아름다운 악녀 * 1959년 세 쌍동 * 1960년 두 여인 * 1960년 버림받은 천사 * 1961년 일편 단심 *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 * 1963년 언니는 좋겠네 * 1964년 신식 할머니 * 1965년 신화를 남긴 해병 * 1966년 양반전 * 1967년 9인의 귀순병 * 1967년 격장의 아이들 * 1967년 월하의 공동묘지 * 1968년 낮과 밤 * 1968년 단벌신사 * 1968년 고향무정 * 1968년 여자의 일생 * 1969년 생명 * 1969년 동경의 왼손잡이 * 1969년 투명인간 * 1970년 아파트를 갖고 싶은 여자 * 1971년 쇠사슬을 끊어라 * 1972년 무녀도 * 1973년 뜨거운 영광 * 1973년 쥬리아와 도꾸가와 이에야스 * 1974년 여대생 가정부 * 1974년 사랑이 있는 곳에 * 1974년 어둠속의 목격자 * 1974년 암살지령 * 1974년 왜 그랬던가 * 1975년 조총련 * 1975년 태풍을 일으킨 사나이 == 수상 경력 == * 1961년 제9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조연상 * 1963년 제6회 부일영화상 남우조연상 * 1966년 제4회 [[청룡영화상]] 남우조연상 * 1968년 제11회 부일영화상 남우조연상 * 1970년 제7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* 1972년 제8회 [[백상예술대상]] 영화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 * 1974년 제13회 [[대종상]] 영화제 남우조연상 * 1975년 제14회 대종상 영화제 특별공로상 [[분류:한국 남배우/ㅎ]][[분류:뮤지컬 남배우/ㅎ]][[분류:대한민국의 연극 배우]][[분류:성동구 출신 인물]][[분류:1925년 출생]][[분류:1944년 데뷔]][[분류:1975년 사망]][[분류:심혈관질환으로 죽은 인물]][[분류:요절한 배우]][[분류:대한민국의 무종교인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