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회원수정)] [include(틀:제5공화국의 국무위원)] [include(틀:통일부장관)] [[파일:허문도.jpg|width=300]] 許文道 [[1940년]] [[2월 26일]] ~ [[2016년]] [[3월 5일]] (향년 76세) [목차] == 개요 == 대한민국의 언론인, 정치가. 본관은 [[김해 허씨|김해]](金海).[* 25세손 ◯도(道) 항렬] [[대한민국 제5공화국|제5공화국]] [[전두환]] 정권시기 [[허삼수|쓰]][[허화평|리]][[허문도|허]] 가운데 1인. == 생애 == 1940년 [[경상남도]] [[고성군(경상남도)|고성군]] 마암면 도전리[[http://m.blog.daum.net/yghh8965/25?np_nil_b=2|#]][* 마암면사무소는 도전리에 있다.]에서 태어났다. [[부산고등학교]], [[서울대학교]] 농과대학 농학과를 졸업한 뒤 [[조선일보]]에 [[기자]]로 입사하였고 일본 특파원 등을 지냈다. [[김옥균]]을 연구하기도 했다. [[12.12 군사반란]] 이후 전두환이 실권을 잡자, 일본에 있던 허문도는 제 발로 한국까지 날아와 전두환을 접촉하여 자문을 해주었다. 그 후 전두환이 1980년 4월 [[중앙정보부|중정부]]장 서리를 겸직하면서 허문도를 잊지 않고 중정부장 [[비서실장]]으로 임명하면서 군 출신인 [[허삼수]][* 두 사람은 부산고등학교 동문이다.], [[허화평]][* 두 사람은 토사구팽 당한다.]과 더불어 [[전두환]]의 최측근인 속칭 '쓰리허'의 일원으로 꼽히게 되었다. [[5.17 내란]] 이후에는 [[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]] 문화공보위원으로 임명되었다. 이로써 [[제5공화국]]의 언론과 문화 정책을 총괄하게 되었다. 1980년 9월에는 [[청와대]] [[대통령비서실]] 산하 공보비서관에 임명되었다. 이 때 바로 그 유명한 관제축제인 '[[국풍81]]'을 기획하였다. [[언론통폐합]] 및 언론기본법 또한 그의 작품이다. MBC 드라마 [[제5공화국(드라마)|제5공화국]]에서는 [[허화평]], [[허삼수]]에게 언론통폐합이 필요하다고 설득시킨 것으로 나왔다. 1982년 1월 문화공보부 [[차관]]에 임명되었다. 1984년 대통령비서실 정무 제1[[수석비서관]]을 역임하였는데, 1985년 여름에 문제를 일으킨 학원안정법안이 그의 작품이라는 의견이 있다. 그 후 1986년 ~ 1988년 동안 제13대 국토통일원(현 [[통일부]]) 장관을 역임했다.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1989년에는 [[대한민국 국회|국회]] 문교공보위원회에 출두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나, 일본으로 망명하였다. 1980년 대규모 기자 해직을 진두지휘한 혐의로 소환 당했는데, 그에 응하지 않고 도망친 것. 그 뒤 1990년 5월에 언론 해직관련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, 1991년에는 [[민주자유당]] 특임위원을 지냈다. 1996년 [[제14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무소속]]으로 경상남도 고성군-[[통영시|충무시-통영군]]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, [[민주자유당]] [[정순덕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98년 [[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]]에서는 [[경상남도지사]]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, [[현역]] [[도지사]]인 [[한나라당]] [[김혁규(정치인)|김혁규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99년 [[불교TV]] 사장이 되었으나, 노조와 언론단체, 불교계의 반발로 6개월만에 해임되었다. 2000년에는 [[자유민주연합]] 경기도 [[수원시]] [[권선구]][* 허문도는 [[금곡동(수원)]]에서 거주하였다.] 지구당 위원장을 지냈고, 2002년에 특임위원장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하였다. 2016년 3월 5일 오전 7시 30분경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 7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. 쓰리 허 중에선 가장 먼저 사망한 인물. == 허문도를 연기한 [[배우]] == * [[1995년]] [[송영창]] - [[제4공화국(드라마)|제4공화국]] * [[2005년]] [[이희도]] - [[제5공화국(드라마)|제5공화국]] == 선거이력 ==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. || 연도 || 선거종류 || 소속정당 || 득표수(득표율) || 당선여부 || 비고 || || 1992 || [[제14대 국회의원 선거]] (경남 충무/통영/고성) ||<|2> [include(틀:무소속)] || 33,471 (29.9%) || 낙선 (2위) || || || 1998 || [[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]] (경상남도지사) || 157,337 (12.5%) || 낙선 (3위) || || == 수상경력 == * 보국훈장 천수장 (1980) * 청조근정훈장 (1992) == 여담 == * [[논어]](論語)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 '朝聞道 夕死可矣' (조문도 석사가의,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)를 한때 ''''許文道''' 夕死可矣' ('''허문도''' 석사가의, 허문도는 저녁에 죽어도 좋다)로 바꿔 말하는 [[개드립]]이 유행했었다. 허문도가 한창 극강의 권세를 부리던 5공 시절, 어느 [[고등학교]] [[한문(교과)|한문]] 교사가 학생들에게 '朝聞道 夕死可矣'를 가르치시면서 실수로(?) '許文道 夕死可矣'라 칠판에 쓴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. --오오, 그대는 [[용자]]!-- * 허문도가 도쿄대학원에 유학하던 시절에는 재일교포 사업가인 박용구 씨가 세운 박용구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. 아이러니한 건 박용구는 개혁 우파 성향이며, 혁신계 인사인 [[조용수]]의 민족일보 창간에 큰 도움을 주었다. [[분류:기자]][[분류:기자 출신 정치인]][[분류:고성군(경상남도) 출신 인물]][[분류:조선일보 관련 인물]][[분류:전두환 정부/인사]][[분류:수석비서관]][[분류:김해 허씨]] [[분류:부산고등학교 출신]][[분류:서울대학교 출신]][[분류:1940년 출생]][[분류:2016년 사망]][[분류:대한민국의 정치인]][[분류:대한민국의 차관급 인물]][[분류:대한민국의 장관급 인물]][[분류:대한민국의 내셔널리스트]][[분류: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