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합천 옥전 금동관1.jpg]] [[https://blog.naver.com/solhoo/221444101541|사진 출처 :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. 가야사 복원을 기원하며]] [목차] == 개요 == 1980년대 [[경상국립대학교]]에서 [[경상남도]] [[합천군]]의 [[옥전 고분군]]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1639099&cid=43065&categoryId=43065|#]]에서 유물 출토 작업을 하던 중 M6호분에서 발견한 5세기 후반 [[신라]]시대의 금동관. 현재 [[경상국립대학교박물관]]에 소장되어 있다. == 내용 == [[파일:합천 옥전 금동관2.jpg]] [[http://www.danbinews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11300|사진 출처 : 단비뉴스 금관은 왕이 머리에 쓴 것일까?]] 1985년부터 6년간 [[경상국립대학교박물관]]에 의해 5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된 합천 옥전 고분군에서 발견된 신라시대의 금동관으로, 총 200여기에 이르는 옥전 고분 중 M6호분에서 출토되었다. 유물의 제작 연대는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. 과거 합천은 [[대야성]]으로 유명한 곳으로, 사실 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1639099&cid=43065&categoryId=43065|옥전 고분군]]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, 일반적으로 옥전 고분군에 자리잡고 있는 능묘들은 대부분 [[가야]]시대의 것이며, 출토되는 유물들도 상당수 가야시대의 것이다. 하지만 M1호분과 M2호분에 출토되는 [[신라토기]], 로만글라스 [[유리]]잔, 편원어미형말띠드리개(扁圓魚尾形杏葉)나 M6호분에서 출토된 이 출자형금동관(出字形金銅冠) 등은 모두 5세기 후반경에 [[낙동강]] 동안지역으로부터 유입된 이른바 [[신라]]계유물로 간주될 수 있는 것들이다. 옥전군 고분군을 보면 일반적으로 5세기 후반의 이른 단계에는 신라계문화의 유입이 많았고, 좀더 늦은 단계에는 [[대가야]]계 문물의 유입이 압도하게 되는데 특히 5세기 말경으로 추측되는 옥전 M3호분 부터는 대가야계유물이 지배적이 된다. 실제로 [[대한민국의 보물|대한민국 보물]]로 지정된 합천 옥전 유물들은 모두 가야시대의 유물로 등록되어 있다. 이 금동관은 가야시대 고분들 사이에서 발견된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출자형 금동관으로 그 가치가 높다. [[파일:합천 옥전 금동관3.jpg]] [[파일:합천 옥전 금동관4.jpg]] 합천 옥전 금동관과 함께 발견된 은제 보관(寶冠) 중 하나의 모습. [[https://ladysumi.blog.me/10155438003|사진 출처 : 합천 가볼만한곳 합천박물관]] 당시 합천 옥전 M6호분에는 출자형입식(出字形立飾)이 있는 이 금동제 금관과 함께 은제 보관(寶冠) 3점이 출토되었으며, 그 외에도 금공장신구류 부장과 금동장투구(金銅裝甲胄), 마구류, 다양한 [[신라토기]]들이 발견되었다. 5세기 후반~6세기 경, [[대가야]] 문화권 안에 공존했던 신라 문화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. [[분류:신라의 금제유물]] [[분류:경상국립대학교박물관 소장품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