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<-4><tablewidth=400px><table bordercolor=black><bgcolor=black><:> '''[[고사성어|{{{#white 고사성어}}}]]''' || ||<width=25%><:> {{{+5 '''咸'''}}} ||<width=25%><:> {{{+5 '''興'''}}} ||<width=25%><:> {{{+5 '''差'''}}} ||<width=25%><:> {{{+5 '''使'''}}} || ||<:> 다 '''함''' ||<:> 일어날 '''흥''' ||<:> 어긋날 '''차''' ||<:> 부릴 '''사''' || [목차] == 유래 == [[조선]] 건국 초기에 있었던 [[야사(역사)|야사]]에서 비롯된 [[사자성어]]. '함흥에 가는 차사'라는 뜻이다. 즉, 보낸 사람(파견인)이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소리 ||다섯째 아들인 [[태종(조선)|태종]] 이방원의 [[제1차 왕자의 난|행]][[제2차 왕자의 난|동]]에 분노한 태조 [[이성계]]는 고향인 [[함흥]]으로 떠나버렸는데 이때 [[옥새]]도 함께 가지고 가버렸다. 즉, '''"너 같은 놈은 내 자식도 아니고, 이 나라의 임금도 아니다!"'''라는 의사 표시였는데 이 때문에 [[명나라]]에서 "옥새도 없으면서 무슨 왕? 옥새를 받아오든지 왕위에서 물러나든지 둘 중 하나를 골라라"면서 압력을 넣는다. 이에 상황이 난처해진 태종은 태상왕(太上王)[* 현재 즉위하는 임금의 선선대 임금을 이르는 호칭이다. 당시 상왕은 태종의 형이었던 [[정종(조선)|정종]] 이방과.] 이성계한테 차사를 보내 옥새를 양도하고 [[한양]]으로 돌아오시라는 전갈을 보냈는데 아들을 미워했던 태조는 집 뜰에 초소를 설치해 태종이 보낸 차사들이 왔다는 보고가 들어오면 직접 말을 타고 나가서 [* 다 [[이성계]]에게 죽은 건 아니고 송류는 이성계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이성계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했다. 마지막에 죽은 박순은 이성계의 마음을 흔드는 데 성공했지만 역시 돌아가는 길에 병이 나서 쉬던 중 이성계의 부하들에게 죽는다. 이 일화들은 모두 사극 [[용의 눈물]]에 묘사된다.] '''활로 쏴 죽였다'''. 이 사신들의 직책이 차사라서 결국 "어디에 뭘 하러 갔는데 도통 소식이 없는 사람"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. 이에 태종은 왕의 자질을 직접 보이고 인정받기 위해 사병제도를 없애 왕권을 강화시키는 등 노력을 했고, 후에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방문하여 "지금 주상께서는 훌륭히 잘 하고 계십니다"라며 이성계를 설득했고, 그는 마침내 한양으로 돌아오게 된다. 태종은 이성계가 돌아오자 궁 밖까지 마중을 나가 아버지 앞에 엎드려 통곡했고, 그 모습을 본 이성계는 결국 태종에게 옥새를 넘겨주었다. || == 진실 == 실제로 함흥차사 중 이성계에게 사망한 이는 '''없다.''' 함흥차사 에피소드에서 특히 유명한 인물로는 [[박순]]과 [[성석린]]이 있다. 성석린은 자청해서 차사로 갔다가 이성계가 칼을 쥔 채 "자네도 차사로 왔는가?"라고 묻자 둘러대며 한다는 소리가 '''"신이 차사로 왔다면 신의 두 아들은 눈이 멀 것입니다"'''라 목숨은 건졌지만 나중에 정말로 아들 둘이 소경이 되었다고 전한다.[* 본인이 눈이 멀었다는 버전도 있다. 출처는 [[연려실기술]].] 박순은 망아지 딸린 어미말을 데려가 이성계를 설득하는데 성공했지만, 이성계의 신하들이 가만놔둘 수 없다며 죽이려 한다. 이성계는 그가 이미 용흥강을 건넜으면 살려두라고 했으나, 마침 병을 얻어 느릿느릿 이동하던 박순은 강을 앞에 두고 자객에게 암살당했다고 전해진다. 이성계는 살려보내려 했던 박순이 살해당한 데 충격을 받고 [[무학대사]]가 찾아오자 그를 따라 이방원에게 돌아왔다는 에피소드로 이야기가 끝이 나며 여기에 [[용의 눈물]]로 유명해진 화살과 기둥 이야기나 철퇴 이야기가 FLC로 추가되기도 한다. 실제로 송유와 박순이 함주에 가서 목숨을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성계와 그의 죽음에는 관련성이 없으며 둘 다 [[조사의]]가 이끄는 반란군에게 목숨을 잃었다.[* 다만 이 조사의의 난이 이성계의 작품이라는 시각도 있으니 간접적인 관련은 있다 할 수 있을듯] 특히 박순은 대놓고 박만을 비롯한 반란군 장수 및 수령들에게 조사의를 따르지 말라고 설득하다가 죽었다.[* 원래 태종은 조사의의 난이 터지자 이서와 설오대사를 보내 태상왕 설득, 박순은 각 수령들을 설득 이천우는 반란 진압 임무를 맡겼다. 하지만 이서와 설오대사는 반란군에 막혀서 실패 박순은 살해당해서 실패 이천우는 패배해서 실패했고 결국 태종이 직접 친정을 나섰다.] 성석린은 아예 차사로 간 적이 없는데, 큰아들 성지도와 그 아들 성귀수가 2대에 걸쳐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이게 엮여서 뒷말이 나온 모양이다. 물론 작은아들 성지도는 좀 일찍 죽긴 했어도 시각장애는 없이 참찬까지 지냈다. 성석린은 태조가 환궁한 후 태종이 문안인사 드릴 때 일부러 골라 보낼 정도로 태조의 총애를 받았기에 차사로 간 적이 없음에도 이런 설화가 나온걸로 보인다. 그리고 중국에서 태종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도 어불성설이다. 태종 즉위 당시 중국은 [[정난의 변]]으로 시끌시끌한 상황이니 조선 왕 책봉 따위는 뒤로 미뤄야 할 지경이었다. 오히려 영락제 즉위 축하 사절로 간 하륜이 금인과 고명을 내려줄 것을 청하자 순순히 내려주었다. 실제 이성계가 함흥으로 갔을 때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[[조사의의 난]] 문서에 나와 있다. 조사의의 난 자체가 이성계가 이방원을 몰아내고 왕위를 되찾으려고 벌인 역쿠데타 시도였다는 점을 보면 박순 등 함흥차사로 알려진 인물들이 태조에게 죽임당했다는 것 자체는 맞는 말이긴 하다. 무엇보다 태조 이성계는 함흥으로 바로 가지않고 [[소요산]]에 있었던 [[이태조 행궁]]에 머물렀다. == 여담 == [[소설가]] [[김진명]]은 작품 <하늘이여 땅이여>에서 등장인물 사도광탄의 대사를 빌려 함흥차사 속의 메시지 즉 "태조가 아들 태종이 미워서 한양을 떠나 함흥에 틀어박히고는, 태종이 아버지의 귀환을 요청하고자 함흥으로 보내 오는 차사들을 오는 족족 다 죽여버렸기 때문에, '''함흥으로 가는 차사는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'''"는 줄거리를 비틀어, 태조의 옛 친구나 태조를 지지하는 조정의 고위 인사들이[* 당연히 한 나라의 창업 군주이자 왕의 친아버지, 태상왕에게 귀환을 설득하고자 보내는 차사인데 미관말직이나 태조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보낼 리는 없을 테니까.] 권좌에서 밀려난 태조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"함흥으로 가는 차사들은 모두 태조가 보는 족족 활로 쏘아 죽여버리므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더라"는 소문을 퍼뜨렸고 '''차사들을 죽인 주체는 실제로는 태조가 아니라 태종 자신이었다'''고 묘사했다. [* 같은 저자가 쓴 <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>에서도 이러한 해석이 등장한다.] 라디오 프로그램 [[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]]에서는 진행 중에 실수로 '''함흥차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'''[* '평안감사'가 맞는 표현.]라는 말이 나왔는데, 아무 생각없이 그냥 넘어갔다가 뒤늦게 청취자의 제보로 이를 정정한 적이 있다. ~~상식적으로 활 맞아 죽는 거 좋아할 놈이 있나?~~ [[세븐나이츠]]에서는 세나 중 하나인 크리스의 추석 기간한정 코스튬으로 등장한다. [[한국]]과 같은 [[한자문화권]]인 [[중국]]과 [[일본]]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. 중국어로는 石沉大海(shíchéndàhǎi)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鉄砲玉(てっぽうだま; teppodama)라고 한다. 각각 '바다에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는 돌'과 '총에서 발사되어 돌아오지 않는 총알'에 비유한 말이다. * 비슷한 말: [[베이퍼웨어]], [[오리무중]], [[강원도 포수]] === 관련 문서 === * [[이태조 행궁]] * [[1차 왕자의 난]] * [[조사의의 난]] * [[2차 왕자의 난]] [[분류:설화]][[분류:고사성어]][[분류:태조(조선)]][[분류:태종(조선)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