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 [[파일:함석은.jpg|width=333]] || || 이름 || 함석은(咸錫殷) || || [[유형]] || [[인물]] || || [[시대]] || [[일제강점기]] || || 생몰년 || [[1892년]](고종 29년) ~ [[1928년]] || || [[성격]] || [[독립운동가]], [[국가유공자]] || || 출신지 || [[평안북도]] [[용천군]] 부라면 원성동[[http://w3devlabs.net/korea/archives/8430|#]] || || [[성별]] || [[남성]] || || 이력(대표관직) || 대한청년단연합회 편집부장 || [목차] == 생애 == 평안북도 용천군 부라면 원성동 출신. 1919년 3·1운동이 발발하자, 평양의 숭덕학교(崇德學校) 교원으로 평안도지방 학생운동의 책임자가 되어 평양의 각 학교 교사 및 학생을 규합,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.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만주 관전현(寬甸縣)으로 망명, 그곳에서 대한청년단을 조직하여 애국사상의 고취, 독립운동의 선전, 청년단결에 주력하였다. 1920년 [[안병찬]](安秉瓚)·김찬성(金燦星)·김승만(金承萬) 등이 주동이 되어 각지에 산재한 청년단체를 규합, 대한청년단연합회를 결성하자, 이에 참여하여 편집부장으로 기관지 발간에 진력하였다. 이 해 5월 16일 일본군의 피습을 받아 총상을 입고 붙잡혀 총살형이 집행되었으나, 죽음 직전에 중국인의 도움으로 소생하였다. 그뒤 안동현(安東縣)에 은거하다가 무기구입사건으로 다시 일본군에 붙잡혀 3년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. 출옥 후 다시 만주로 가서 활동하였다.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. == 참고문헌 == 『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』(국가보훈처, 1997) 『독립유공자공훈록』4(국가보훈처, 1987) 『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』(김후경·신재홍, 한국민족운동연구소, 1971) == 출처 == [[https://encykorea.aks.ac.kr/|[[파일:민족문화대백과로고.png|width=25]]]] 한국민족문화대백과 [[http://www.aks.ac.kr/|[[파일:이크에크이크에크.jpg|width=25]]]] 한국학중앙연구원 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 [[분류:용천군 출신 인물]][[분류:1892년 출생]][[분류:1928년 사망]][[분류:건국훈장 독립장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