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서울특별시 출신 인물]][[분류:청주 한씨]][[분류:2004년 사망]][[분류:대한민국의 살인범]] [[분류:와세다대학 출신]] || 이름 ||한현우(韓賢宇)|| || 가명 ||홍건|| || 본관 ||[[청주 한씨]]|| || 출생 ||[[1919년]]?, [[1920년]]? [[경성부]](현 [[서울특별시]])|| || 사망 ||[[2004년]]? 2007년? [[일본]] [[오사카부]]|| || 학력 ||[[와세다대학]] 법학과 중퇴|| || 가족 ||[[사위]] 전병민|| ||범죄유형 ||[[살인]]|| [목차] == 개요 == 대한민국의 범죄자. 1945년 [[송진우]] 암살 사건의 범인으로 유명하다. == 유년 시절 ==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선 정보가 별로 없다.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추측되며, 일본에서 유학해 와세다 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중퇴하기도 했다. 정치성향은 보수쪽으로 알려져 있다. == 범행 == [[1945년]] [[12월 30일]] 아침 6시 공범 6명과 함께 [[송진우]]를 찾아가 총 13발을 쏴 그 중 6발을 맞춰 총살했다. 범행 배후는 불분명하나 한현우는 미국의 후견을 지지한 것이 자신의 저격동기며 배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지만 전문가들은 그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이 중론이라고.[* 우발적으로나 본인 스스로 저격할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. 가장 유력한 배후는 역시 염동진, 김구, 신익희의 백색테러 단체 [[백의사]].] 사실 송진우 보다 안면이 있던 몽양 [[여운형]]을 먼저 암살할 계획이었다. [[탑골공원]]에서 여운형을 저격하려 했지만 여운형은 멀리서 그를 알아 보고 인사를 하며 가까이 다가와서 친근하게 대하자 차마 죽일 수 없어서 포기했다고 한다. 이후 일본으로 이민[* 사실상 망명.]을 가 생활했다. [[1950년]] 귀국했다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다시 일본으로 갔다. 망명 후에도 1993년 2월 22일자 《한국일보》 [[https://m.hankookilbo.com/News/Read/199302220041910151|인터뷰 기사]]와 2002년 1월 20일자 MBC 《이제는 말할 수 있다》[[https://youtu.be/lk6H-ESFXhY|'비밀결사 백의사']] 편을 통해 고하 암살은 민족을 위해서 한 것이니 정당하다는 식으로 주장해왔다. == 최후 == 정확한 사망시기는 알 수 없으나, 한국어 위키백과에선 2004년 혹은 2007년에 일본에서 사망했다고 나온다. 사실관계를 막론하곤 80년 넘게 살았으니 천수를 누리고 간 셈. == 여담 == 전 청와대 정책수석 전병민의 장인으로도 알려져 있다. 1993년 당시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병민은 사임을 표하게 된다. == 대중매체에서 == 1981년작 MBC 드라마 <제1공화국>에선 성우 나성균이, KBS1 <다큐멘터리극장> 1994년 2월 6일 방영분에선 배우 손호균이 각각 연기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