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한국의 아나키스트]][[분류:동구(부산) 출신 인물]][[분류:1903년 출생]][[분류:1960년 사망]][[분류:건국훈장 애족장]][[분류: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]] || 성명 ||한하연(韓何然) || || 이명 ||한하현(韓河鉉), 한하원(韓河源) || || 생몰 ||[[1903년]] [[12월 18일]] ~ [[1960년]] [[3월 26일]] || || [[출생지]] ||[[경상남도]] [[부산광역시]] [[동구(부산)|동구]] [[초량동]] || || 사망지 ||[[경상남도]] [[부산광역시]] || || 매장지 ||[[국립대전현충원]] 독립유공자 묘역 || || 추서 ||건국훈장 애족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독립운동가.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. == 생애 == 한하연은 1903년 12월 18일 경상남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. 그는 1926년 3월 함경남도 원산에서 조종구(趙鍾九)와 함께 동지를 규합하여 원산청년회(元山靑年會)를 결성하고 이향(李鄕)·[[조시원]]·유우석(柳愚錫) 등과 함께 대중적 청년단체인 원산청년회를 중심으로 아나키즘 비밀결사인 본능아연맹(本能兒聯盟)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. 1927년 4월 23일 원산청년회에서 활동하다가 사회주의계열 청년들의 습격을 받고 격투 끝에 서로 사상자가 발생했고,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되어 함흥지방법원에서 상해치사혐의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은 뒤 경성복심법원에서 원심대로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28년 7월 27일 고등법원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무죄를 언도받고 출옥하였다. 그후 그는 1928년 일본으로 건너가 흑풍회(黑風會)를 강화하여 흑우연명(黑友聯盟)으로 발전시키면서 [[원심창]]·장상중(張祥重)·정태성(鄭泰成) 등과 함께 기관지로 《호조운동(互助運動)》을 발행하며 무정부주의 선전을 위하여 활동하였다. 1929년 2월 귀국한 그는 경남 마산에서 김산(金山) 목사와 함께 소비조합운동을 전개하였다. 1933년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(有吉明)를 처단하려던 [[이강훈(독립운동가)|이강훈]], [[백정기]] 등이 경찰에 체포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자 이들에 대한 규명운동을 전개하면서 [[홍성환(1905)|홍성환]]을 파견하여 위문하는 등의 지원을 하였다.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은거하던 그는 [[8.15 광복]] 후인 1946년 아나키즘 정당인 독립노농당(獨立勞農黨) 기획부장으로 참여했다. 이후 1960년 3월 26일 부산에서 사망했다.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한하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. 그리고 1994년 그의 유해를 [[국립대전현충원]]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