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777사령관)] 韓哲鏞 1946년 ~ [목차] == 개요 == [[대한민국]]의 [[군인]]. 최종계급 육군소장. 본관은 [[청주 한씨|청주]](淸州). == 생애 == 1946년생. 지금의 [[제주특별자치도]] [[제주시]] 구좌읍 김녕리[* 인근의 월정리와 함께 [[청주 한씨]] 집성촌이다.][[http://www.jejunews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1977110|#]] 출신으로 [[오현고등학교]]를 졸업한 뒤 1966년 [[육군사관학교]] 26기로 입학해 1970년에 임관했다. 동기로는 [[신일순]] [[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]], [[이상희(육군)|이상희]] [[국방장관]] 등이 있다. 병과는 통신으로 [[777사령부]]에서 주로 근무했다. [[국가정보원]]장 군사보좌관, [[제8기동사단|8사단]]장 등을 지냈다. 하마터면 대위로 전역할 뻔 했다. 당시에는 소령을 6-7년이면 달았는데 1976년, 1977년 소령진급심사에서 연거푸 떨어졌다. 이복형이 [[재일교포]]였는데 1950년대 말에 만경봉호를 타고 [[재일교포 북송]]으로 [[북한]]에 갔다. 그때문에 [[연좌제]]로 진급에 불이익을 받았다.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진급청원편지를 써서 간신히 진급에 성공했다. 48세이던 1994년 12월에 결혼했다. 아내는 10살 연하(38세)인 추순삼 대령(여군 27기)[* 결혼당시에는 한철용은 준장(진)이었고 추순삼은 중령이었다. 추대령은 1979년 임관해 여군발전단장 등을 지냈다.] 준장(진) 상태에서 결혼식을 올려서 총각장군은 아니었다. 총각장군은 2013년에 [[정우교]] 준장이 타이틀을 쥐게 된다.[[https://www.hankookilbo.com/News/Read/199412290091073676|신문기사]] 2002년에 [[777사령부|5679부대]]장으로 재직 중에 [[연평해전]] 직전 북한 경비정의 도발을 상급부대에 보고하였는데, 최종적으로 단순침범으로 보고되었다. 이후 [[연평해전]]이 발발하였다. 그후 국정감사가 열리자 일일정보 보고서[* 2급비밀. 블랙북이라고도 한다.]를 흔들며 [[기무사]]가 5679부대를 표적수사했다고 주장했고 국방장관인 [[김동신]]이 북의 도발징후를 묵살했다는 주장을 했다. 이 일로 정직 1개월을 당했고 현역복무 부적격 심사를 받게 되었다. 특히 이 과정에서 [[국군기무사령부]]가 5679부대를 조사한 것 때문에 말이 많았다. 군내 3대 정보기관이 같은 정보기관을 처음으로 [[감사]]를 맡게 한 것 때문이다. 그후 2002년 10월에 정직 처분을 받은 채 불명예 전역했으나 2005년 항소심에서 승리해 정직 조치는 사라졌다. 재판부는 경비정 도발을 단순침범으로 보고한 것은 정보본부의 분석 실수이지 한소장의 책임은 아니라고 봤다. 2010년에는 육사 1기수 선배인 [[남재준]] 장군과 갈등을 빚었다. 한소장이 회고록을 펴내면서 실명을 적시하진 않았지만 연평해전 당시 한미간 정보공유 문제 등을 놓고 당시 [[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]]을 비판한 것. 당시 부사령관이 남재준 대장이었다. 그러자 남재준 대장은 한철용 소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토론을 하다가 국방 고위직 출신들끼리 설화가 일어나선 안 된다고 중단했다.[[http://www.hani.co.kr/arti/politics/defense/597354.html|관련기사]] [[분류:대한민국의 군인]][[분류:1946년 출생]][[분류:제주시 출신 인물]][[분류:청주 한씨]][[분류:오현고등학교 출신]][[분류:육군사관학교 출신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