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청주 한씨]][[분류:북청군 출신 인물]][[분류:1900년 출생]][[분류:1950년 사망]][[분류:건국훈장 애국장]] || 성명 ||한진술(韓鎭述) || || 본관 ||[[청주 한씨]][* 예빈윤공파 21세.] || || 생몰 ||[[1900년]] [[5월 23일]] ~ [[1950년]] [[9월]] || || [[출생지]] ||[[함경남도]] [[북청군]] 상거서면 엄동리[* 인근의 상돌리와 함께 [[청주 한씨]] 집성촌이다.][br](현 함경남도 [[덕성군]] 엄동리) || || 사망지 ||미상 || || 추서 ||건국훈장 애국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[[독립운동가]].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. == 생애 == 한진술은 1900년 5월 23일 함경남도 북청군 상거서면 엄동리(현 덕성군 엄동리)에서 아버지 한도준(韓道俊)과 어머니 [[김해 김씨]] 김성갑(金成甲)의 딸 사이의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. 그는 일찍이 [[만주]]로 이주해 [[중국]] [[지린성]] 장백현 십오도구(十五道溝)[* 현 [[중화인민공화국]] [[지린성]] 바이산(白山)시 창바이(長白)조선족자치현 스우따오꺼우(十五道溝)촌.] 군량동(軍糧洞)에 거주했다. 그는 1922년 장백현에서 광정단(光正團)의 단원이 되었으며, 김서운(金瑞雲), 김창일(金昌鎰) 등과 함께 [[함경남도]] [[삼수군]] 삼수경찰서 영성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 순사를 사살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. 그러다 체포된 그는 함흥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, 주거침입, 강도살인, 강도상인, 폭발물취체벌칙 위반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[[서대문형무소]]에서 옥고를 치르다 1940년 11월 10일에 가출옥했다.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.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한진술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