韓融 생몰년도 미상 [[후한]] 말의 인물. 자는 원장(元長). 한소[* 영현 현령을 지냈고 후한서에 열전이 있다.]의 아들. 영천 사람으로 명사 [[진식#s-2|진식]]의 제자. 진식이 죽자 태부령을 지내면서 [[순상]] 등과 함께 상복을 입고 장례에 참석했으며, [[동탁]]이 정권을 잡자 공경에 임명되었다. 190년에 원소 등이 산동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한융은 대홍려를 지내고 있다가 [[음수(삼국지)|음수]], [[호모반]], 오순 , 왕괴 등과 함께 원소 등의 군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사신으로 파견되었다. 그러나 대부분은 원술, 왕광 등에게 살해당했지만 한융 만은 명성과 덕망으로 인해 화를 면했다. 이게 생각보다 상당한 일로 호모반은 [[왕광]]의 매부로 왕광이 죽이기 싫어서 눈물을 흘렸지만 원소가 강압적으로 나가서 죽였고, 음수의 경우도 대단한 인물이었는데 얄짤없이 죽었다. 그런데 한융만 살아남은 것이다. [[삼보의 난]] 때 10여 명의 백관들과 함께 [[헌제]]를 수종했으며, 195년에 사치와 함께 조서를 받들어 홍농에 장제에게 사신으로 파견되어 이각, 곽사 등을 화해하게 하면서 약탈한 궁인, 공경, 백관들, 승여, 거마 몇 승을 되돌려보내게 해 이들이 모두 안읍에 도착하게 된다. 이후에도 벼슬이 [[태복]]에 이르렀으며, 70세의 나이로 자연사했다. [[분류:한나라의 관료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