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역대 한(전국시대) 군주)] ||||||<table align=right><bgcolor=#0B3861> '''{{{#ece5b6 한(韓)씨 가문 21대 종주[br]한(韓)나라 11대 국군[br]5대 왕[br]{{{+1 한왕 안}}}[br]韓王 安}}}''' |||||||||| ||||<bgcolor=#0B3861> '''[[성씨|{{{#ece5b6 성}}}]]''' |||| 희(姬) || ||||<bgcolor=#0B3861> '''[[본관|{{{#ece5b6 씨}}}]]''' |||| 한(韓) || ||||<bgcolor=#0B3861> '''[[휘|{{{#ece5b6 휘}}}]]''' || 안(安) || ||||<bgcolor=#0B3861> '''{{{#ece5b6 아버지}}}''' |||| [[한환혜왕]](韓桓惠王) 한연(韓然) || ||<bgcolor=#0B3861> '''{{{#ece5b6 생몰 기간}}}''' || 음력 || 기원전 ???년 ~ 기원전 226년 || ||<bgcolor=#0B3861> '''{{{#ece5b6 재위 기간}}}''' || 음력 || 기원전 238년 ~ 기원전 230년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중국 [[전국시대(중국)|전국시대]] [[한(전국시대)|한(韓)나라]]의 제11대 군주. 제5대 [[왕]]. [[한환혜왕]]의 아들. 이때 결국 [[한희왕]]과 [[한환혜왕]] 대의 계속 된 패배 누적을 견디지 못하고 [[멸망]]하였다. 즉, 뭘 해도 멸망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. == 생애 == 한왕 안 5년(기원전 234년), [[진(통일왕조)|진나라]]의 장수인 [[번오기]](樊於期)[* 사람 이름으로 쓸 때는 於의 발음이 '어'가 아닌 '오'다.]가 [[조(전국시대)|조(趙)나라]]의 평양(平陽), 무성(武城)을 차지하고 10만 명을 죽였다. [[조(전국시대)|조나라]]의 장수 호첩(扈輒)은 그 전투에서 전사했다. 이에 위기감을 느낀 한왕 안은 [[한비자]](韓非子)를 사신으로 보냈는데, [[시황제|진시황]](秦始皇)은 그를 중용하려고 했으나 [[이사(전국시대)|이사]](李斯)가 그를 모함해 죽였다. 한왕 안 9년(기원전 230년), 진나라에서 내사 [[등(전국시대)|등(騰)]]을 보내 한나라를 쳐서 멸하니 한왕 안은 투항했다. 진나라는 멸망한 한나라 땅에 영천군(穎川郡)을 두었다. 치소는 양택현이었다.[* 참고로 그곳은 삼국지에서 [[조조]](曹操)의 모사 곽가(郭嘉)의 고향이다.] 진시황[* 원래는 진왕 정이라고 해야 맞으나, 진시황으로 흔히 알려져 있으니 그리 적는다.] 21년(기원전 226년), 신정(新鄭)에서 한나라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시황은 그것을 진압하고 본보기로 한왕 안을 제거한다. 훗날 진시황이 죽고 그 아들인 [[이세황제|영호해]]가 즉위했을 때 [[장량(전한)|장량]](張良)이 [[항량]](項梁)의 허락을 구해 한나라의 왕손인 [[한왕 성]](韓王成)을 세워 한나라를 다시 세웠다. 그 뒤 한왕 성이 [[항우]]에게 죽임을 당해 한나라가 또다시 망했으나, [[고제(전한)|유방]]과 장량의 협조로 조카인 [[한신(한왕)|한왕 신]](韓王信)이 뒤를 잇는다. 한왕 신은 유방을 배신하지만 후손이 용서받아 전후한, 위나라, 서진까지 종가가 쭉 출세하면서 이어진다. 대가 끊김이 기본인 다른 [[전국칠웅]] 직계 후손과 비교하면 가장 [[해피엔딩]]. [각주] [[분류:한(韓)나라의 군주]] [[분류:퇴위한 군주]] [[분류:기원전 226년 사망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