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external/tv.pstatic.net/201005111258397231.jpg|width=150]] [[파일:external/aabbb.mynews3.kr/shp_1313352274.jpg]] 韓昇助 [[1930년]] [[1월 13일]], [[일제강점기]] [[경기도]] [[경성부]] ~ [[2017년]] [[7월 25일]] (향년 87세) [목차] == 개요 == 대한민국의 교육자, 정치학자, 철학자, 언론인, 우익운동가로 한승조(韓昇助)는 필명이고 본명은 '''한기식'''이다.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[[박홍(종교인)|박홍]] 前 서강대 총장, [[송복]] 前 연세대 교수와 함께 [[극우]] 논객 3인방으로 손꼽혔던 인물이다.[* 사실 사상계 출신인 송복 교수나 극우 변신 전에는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기도 했던 박홍 신부와 달리 일관된 극우 친일 발언으로 3인방에서 비교적 말석에 있던 인물이긴 했다.] == 경력 == [[고려대학교]]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[[미국]]으로 유학, [[캘리포니아 대학교/버클리 캠퍼스|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]]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[[1967년]]부터 [[1995년]]까지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다. 재임 중 정경대학장을 지냈으며, 한국유신학술원 회원, 한국정치학회 회장, 국민윤리학회 회장, 보수단체인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도 역임했다. 그 외에 아시아 태평양공동체 이사장,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(대불총) 상임고문을 맡았다. 정년 퇴임 후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명예교수에 선임되었다가 '''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글을 쓴 것이 문제가 된 후'''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했다. == 일제강점기 찬양, 미화 ==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민족지성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던 한승조는 수많은 기고를 통해 한일관계 악화를 반대해왔으며 독립운동을 실속없는 짓이라고 표현하는 등의 친일 관련 발언을 수도 없이 해왔다. 2000년 11월 2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<반성해야하는 한국인의 국민성격>이라는 글을 올렸다. 2001년에는 [[한국논단]] 9월호에 일본 교과서 논란을 "어느 나라가 역사교과서를 어떻게 쓰던 그것은 그 나라와 국민의 고유권한이며 역사교과서를 어떻게 써라 주문하는건 내정 간섭"이라고 주장했다. 2004년 8월에는 [[안중근]]의 [[이토 히로부미]] 저격이나 [[윤봉길]], [[이봉창]]의 폭탄투척은 항쟁이라기 보다는 세계의 여론을 환기하려는 외교활동의 일환이라면서 [[독립군(한국)|독립군]]을 전투다운 전투를 한일은 없었다고 봐도 지나친 일이 아니라며[* 노파심에 쓰자면 당장 독립군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만 해 봐도 [[봉오동 전투]]나 [[청산리 전투]]등 여러 전투들이 똑똑히 나오며, 교과서에도 명시되어 있다. 물론 이 전투들의 전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본군보다 훨씬 열세인 독립군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전과를 떠나서 마냥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만은 없다.] 독립군활동을 폄하하기도 했다. 일본 우익언론인 [[산케이 신문]]의 자매지인 세이론(正論) 2005년 4월호에 "공산주의·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: 한일 병합을 재평가하자"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. 글의 내용 중에 "식민지 지배는 축복"이라는 구절 등이 문제되어 대한민국 내 여론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. [[지만원|그를 옹호하는 사람]]들은 이른바 신 친일파라고 불리며 비판받기도 했다. 이 때문인지 2005년에 한승조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해야 했고,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0&oid=028&aid=0000101850|고려대학교 총학생회]]는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. 그러나 그가 공동대표로 있던 자유시민연대 측에선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0&oid=002&aid=0000016927|"한승조 주장, 색다른 견해일 뿐"]]이라며 오히려 옹호 의견을 발표했다. == 대중문화 속의 한승조 == 아무래도 [[지만원]], [[변희재]], [[김완섭]], [[고 젠카]]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명한 친일 어그로꾼이다 보니 많은 비난을 받아왔는데 대표적으로 [[너구리알]]이라는 사람이 만든 플래시 게임인 [[불멸의 이순신 게임]]에서 지만원과 함께 [[독도]]를 침략한 [[일본군]]의 1,2번째 보스로 등장한다. 독도에 관한 퀴즈를 내는데, 5개 이상 틀리면 [[불멸의 이순신/등장인물#s-1|김명민]]이 죽고(?!) 5개 이하로 틀리면 지만원과 한승조가 죽는다.[* 근데 더 웃긴 건 '독도의 명궁'이란 아이템을 먹고 화살을 계속 쏴대거나 범위는 극악이지만 데미지는 게임 내 최강인 [[식칼]](작중 명칭 부엌칼)로 찌르면(단, 일정 데미지를 받으면 문제를 내기 때문에 분노 스킬을 써서 여러 대 치거나 독도의 명검 습득 후 1킬해야 한다. )저항 한 번 못하고 죽는다. 스테이지의 보스라는 포지션인 주제에 퀴즈만 안 내면 별도의 공격이 없기 때문. (3스테이지의 보스는 전투식)] 참고로 이 게임에서 지만원은 너구리알을 [[명예훼손죄]]로 고소하여 한동안 얼굴에 'e'라는 글자로 가려져 있었던 적이 있다. 같은 친일성향의 지만원은 한승조를 옹호하며 "못나니까 당할만하다. 그게 뭐가 잘못이냐"며 말했다. == 사망 == 2017년 7월 25일 그의 자택에서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[[돌연사]]했다. 향년 87세. 사망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집앞 공원에서 산책하러 나갔을 정도로 비교적 건강했다고 한다.[* [[여담]]으로 사망 1년 전 그의 [[부인]]이 지병으로 사망해 정신적으로 좀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.] [각주] [[분류:대한민국의 언론인]][[분류:사회과학 교수]][[분류:1930년 출생]][[분류:2017년 사망]][[분류:돌연사한 인물]][[분류:의문사한 인물]][[분류:서울특별시 출신 인물]][[분류:고려대학교 출신]][[분류:일본 우익사관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