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목차] == 개요 == 고려의 왕자. 이름은 왕윤(王昀). 봉지 한산(漢山)은 [[서울/강남|서울의 강남 지역]]을 가리키는 지명이다.[* 고려사에서 [[신라]]의 경계인 한산 북쪽, [[한강]]상에 장한성(長漢城)이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. (長漢城, 在新羅界, 漢山北, 漢江上.)] == 생애 == [[선종(고려)|고려 선종]]과 후비 원신궁주 이씨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. 외조부는 [[이자연(고려)|이자연]]의 장남 [[이정(고려)|이정]]. 부친 선종이 죽고 이복형 [[헌종(고려)|헌종]]이 11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[[문종(고려)|문종]]의 아들 진한후 왕유, [[정간왕]]의 아들 [[낙랑공|낙랑백 왕영]]과 더불어 수사도에 임명된다. [[문벌귀족]]으로 권신이었던 외숙부 [[이자의]]는 병약한 헌종이 죽은 다음에는 자기 조카인 한산후가 왕위를 잇기를 희망했다. 고려의 왕위 계승을 살피면 대체로 부자 아니면 형제간에 상속했기에 한산후가 왕위를 잇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.[* [[성종(고려)|성종]]-[[목종(고려)|목종]]간의 계승처럼 삼촌에서 조카로 계승한 경우도 있긴 하다.] 그러나 선종의 동생인 종친 [[계림공]]의 세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. 이자의는 외부에서 왕위를 노리는 자들을 견제하고, 한산후에게 왕위가 넘어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받들어야 함을 입버릇처럼 말했다. 이자의가 우려했던대로 헌종 원년(1095) 7월 계림공은 선수를 쳐서 이자의 파벌을 반란 모의 혐의로 숙청해버리고는 이듬해 병사한 조카의 뒤를 이어 [[숙종(고려)|숙종]]으로 즉위해버린다. 왕위 계승에서 밀려난 한산후는 숙종 즉위년(1095) 10월 모친 원신궁주, 동생과 함께 [[경원군]](慶源郡, 지금의 [[함경북도]] 경원군)으로 유배보내졌고, 그 뒤의 일은 알 수 없다. [[분류:고려의 왕자]][[분류:고려의 후작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