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청주 한씨]][[분류:정평군 출신 인물]][[분류:1907년 출생]][[분류:1933년 사망]][[분류:건국훈장 애족장]] ||||<table align=right><bgcolor=white><:>[[파일:한복숙.png|width=300px]][* 1933년 1월 20일, [[서대문형무소]]에서 촬영된 사진.] || || 성명 ||한복숙(韓復淑) || || 본관 ||[[청주 한씨]][* 예빈윤공파 23세.] || || 생몰 ||[[1907년]] [[9월 11일]] ~ [[1933년]] [[4월 8일]] || || [[출생지]] ||[[함경남도]] [[정평군]] 문산면 풍양리[* 인근의 기산리·남양리·덕화리·동천리·문흥리·원봉리·은흥리·중흥리·지양리·평흥리·풍성리와 함께 [[청주 한씨]] 집성촌이다.][br](현 함경남도 정평군 풍양리) || || 사망지 ||[[경성부]] 다옥정 52번지 창옥여관 || || 추서 ||건국훈장 애족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독립운동가.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. == 생애 == 한복숙은 1907년 9월 11일 함경남도 정평군 문산면 풍양리(현 정평군 풍양리)에서 아버지 한국준(韓國俊)과 어머니 [[인동 장씨]] 장도원(張道元)의 딸 사이의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. 농업에 종사하던 그는 1932년 12월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정평농민조합(定平農民組合)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정평경찰서에 체포되었고, 1932년 12월 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[[치안유지법]]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불복하여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했지만 도중에 위장병 증세가 심해 1933년 4월 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보석으로 석방되었다. 그러나 4월 8일 오전 7시 [[경기도]] [[경성부]] 다옥정(현 [[서울특별시]] [[중구(서울)|중구]] [[다동]]) 52번지 창옥여관에서 병사했다.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한복숙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