* [[미스터리 관련 정보]][* 사실상 2018년 연구 결과 미스터리는 해결되었다.] '''이 문서가 가리키는 대상은 학계의 연구 결과 한복이 아닌 [[한푸]]를 착용하고 있는 남성의 소묘이지만, 관용에 따라 '한복 입은 남자'라는 문서 제목을 유지함.''' 韓服 입은 男子 ([[영어]])Man in Korean Costume (1617년 경) || [[파일:external/madamepickwickartblog.com/rubens35.jpg|width=400]] || || [[http://www.getty.edu/art/collection/objects/58/peter-paul-rubens-man-in-korean-costume-flemish-about-1617/|소장중인 폴 게티 박물관 소개 페이지]] || [목차] [clearfix] == 소개 == >드로잉에는 루벤스가 생전 처음 만난 동양인에 매혹돼 정신없이 그렸던 감흥이 그대로 살아 있다. 머리는 작게, 몸집은 좀 크게 그렸는데 이는 루벤스가 특히 복장에 매료됐기 때문이다. 위에서 아래까지 선이 소용돌이치듯 내려오며 옷감의 반짝임까지 살렸다. >○ 《[[조선일보]]》 기사. 2003년 12월 10일. 미국 [[캘리포니아]] 말리브에 있는 J. 폴 게티 박물관이 소장중인 [[페테르 파울 루벤스]]가 그린 드로잉. [[1983년]] [[11월 29일]] [[영국]]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첫 공개되었고 해당 경매장에서 32만 4천 파운드, 한화 약 6억 6천만원에 낙찰되었다. 이 금액은 당시 드로잉 경매 사상 최고가를 갱신한 금액으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. 크기 38.4cm×23.5cm의 드로잉 작품으로, 짙은 회색의 초크로 그린 소묘화로 양쪽 광대뼈 부근에 엷은 붉은 색깔을 칠한 것이 특징. 그리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화풍을 즐기던 루벤스가 드로잉으로 그린 작품이라는 점도 주목받았다. == 조선 남자를 그린 그림? == 1617년 정도에 [[벨기에]] [[앤트워프]]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망건과 도포를 걸친 모습이 특징이다. 1617년 즈음이라면, 흔히 조선에 상륙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알려진 [[박연]]이 조선에 상륙은 커녕 태어나기도 전인 때이다.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이 작품을 처음 수집하고 조사하던 도중 사진 구석에 조그마한 [[범선]]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. 이 배는 위의 작품 사진에서도 찾아볼수 있다. 그림 왼쪽 중단부를 자세히 보면 그리다 만 배가 희미하게 보인다. 이를 바탕으로 "바다를 건너서 온 인물이 아닐까?"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. 그리고 위의 인물이 누구를 그린 것인지 조사하던 도중 해당 그림속 복장이 [[한복]]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《한복 입은 남자(Man in Korean Costume)》인 것이다. 당시 조선과 유럽은 교류가 없었으므로 루벤스가 어떻게 조선인을 모델로 작품을 그릴 수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제대로 된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. 이 사람이 [[임진왜란]] 당시 [[일본]]에 끌려갔다가 다시 유럽으로 팔려간 노예라는 주장이 있는데, 그렇게 보기엔 너무 옷차림새가 단정하고 풍채가 당당하다. 1592년에 발발한 [[임진왜란]]과 시기적으로 근접하고, 당시 노예시세가 하락했다고 할 정도로 조선인 노예가 많이 풀렸기 때문에 일부가 어떻게 흘러흘러 유럽으로 건너갔을 것이란 추정이다. 이와 관련해서 가장 유력하게 언급되는 인물이 '''[[안토니오 꼬레아]]'''이다. 오세영의 소설 《[[베니스의 개성상인]]》의 모델이기도 하지만, [[부산대학교]] 사학과 곽차섭 교수의 책 《조선청년 안토니오 꼬레아 루벤스를 만나다》에서도 이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3&oid=020&aid=0000224105|가설]]을 택하고 있다. 곽차섭 교수는 이 그림의 인물은 [[철릭]]을 입은 조선인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. 이 주장에 따르면 《한복 입은 남자》의 모델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뒤 피렌체 상인 카를레티가 구매해서 로마로 데려온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것이다. 그러나 지명숙과 왈라벤은 노예로 팔려와 유럽에 온 한국인이 그와 같은 벼슬아치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지적한다. 그보다는 일본에서 일했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무역사무소 소장 자크 스펙스(Jacques Specx; 1585 ~ 1652)가 고용했던 한국인 수종(隨從)이 1615년경 로마가 아닌 네덜란드에 온 것을 스케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. 그 외에 다른 가설로는 명나라나 일본에서 활동한 [[예수회]] 선교사가 보내온 선교 보고서에 조선인의 그림이 실렸고 루벤스는 이를 묘사한 것이라는 설과, 아예 '''이 옷이 한복이 아니라''' [[명나라]]에서 돌아온 선교사의 [[한푸|명나라 복식]]을 보고 드로잉한 그림이라는 설도 존재한다.[* 실제로 조선에서 관복인 [[단령]]이나 양반계급 남성 정장인 [[도포]]는 모화사상 때문에 명나라 복식을 많이 따라했다.]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주장으로는 루벤스가 외교관을 했다는 이력을 들어 그가 아시아 지역의 외교를 다녀오고 난 후 아시아 의상에 깊은 감명을 얻어 자신의 그림에 아시아적 요소를 넣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. 실제로 위의 드로잉을 전시하고 있는 미국의 전시관에서 큐레이터는 작품을 소개할 때 이러한 주장을 인용하여 설명한다. 자신의 아시아 외교의 성과를 축하하기 위해, 기념으로 아시아 의상을 입힌 유럽의 제사장 및 해외 대사를 그렸다는 것이다. 다른 드로잉 작품으로는 중국 의상을 입힌 작품이 있는데 당시 유럽의 제사장 모습과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. 이는 평소 루벤스가 해외 문화에 큰 관심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. == 사실은 중국인 == 최근 관련 학계에서는 이 그림의 주인공이 '''1600년 네덜란드를 방문'''했던 '흥포(興浦)'라는 명나라 상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.([[https://news.v.daum.net/v/20181227193258585|기사]], [[http://www.academia.edu/29020820/_A_New_Identity_for_Rubens_s_Korean_Man_Portrait_of_the_Chinese_Merchant_Yppong_Netherlands_Yearbook_for_History_of_Art_66_2016_pp._142-169|논문]]) [[한복]]과 명나라 시대 [[한푸]](즉, [[고려양]])의 유사성 때문에 약 80여년간 모두 착각하고 있었던 셈. 그림의 주인공이 네덜란드를 직접 방문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 동양 복식을 루벤스가 알고 그릴 수 있었냐에 대한 미스터리도 이것으로 해결되었다. 또 한 가지 증거를 뽑자면 남자가 입은 의관에 비치는 [[상투]]의 모양이 조선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이다. 조선식 상투는 청대 이전 한족처럼 머리를 묶어 고정하는 형태이기는 하나 상투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정수리 숱을 쳐서(이걸 "배코친다"고 한다) 그 위에 상투를 틀었기 때문에 [* 물론 상투를 틀 때 무조건 숱을 친 것은 아니며 자르지 않고 머리를 그대로 기르거나 숱이 많으면 쌍상투를 트는 방식도 흔했다. 자세한 것은 [[상투]] 문서 참고] 크기가 저렇게 크게 나오지 않는다. 청나라 이후 한족들은 만주족의 강요로 [[변발]]을 해야 했기 때문에 청대 이전의 상투 트는 법이 실전되긴 했으나 저 남자의 상투크기는 조선시대 인물화나 풍속화에 나오는 상투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크다. == 또다른 작품? == ||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Peter_Paul_Rubens_-_The_miracles_of_St._Francis_Xavier_-_Google_Art_Project.jpg|width=700]] || ||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적. 1618년. || [[페테르 파울 루벤스]]가 다른 작품에도 동양인을 등장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. 바로 위의 작품인데, 해당 작품은 [[프란치스코 하비에르]]를 그린 것이다. 이 작품엔 여러 국적을 가진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는데, 중간에는 동양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노란 도포를 입고 망건을 쓰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쪽을 우러러보고 있다. 복식에 나타난 망건과 끈을 맨 신발, 도포의 구체적인 묘사를 보건대, 어찌되었건 루벤스가 최소한 한복을 입은 인물을 직간접적으로 보기는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. 동시대 중국 등 아시아권의 복장을 뭉뚱그려 표현했다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, 이미 아시아권도 나라별로 복식과 장식 등이 특징에 따라 분류되던 시기이다. 그림의 중심인물인 하비에르의 행적상 세계 여러나라 인종들을 묘사하고 있는데, 저 인물의 바로 옆에 있는 남미 멕시코계 인물 또한 그러한 작가의 의도에서 그려졌다 볼 수 있다. ||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Peter_Paul_Rubens_-_The_miracles_of_St._Francis_Xavier,_Modello_-_Google_Art_Project.jpg|width=700]] || || 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기적. 모델로 || 앞의 작품 제작 전에 만든 모델로(modello)[* 본 작품을 완성하기 전 제작하는 예상도.]의 경우, 해당 인물이 서있는 자리에 뚱뚱한 중동 사람을 그려 놓았다. [[분류:미술 작품]][[분류:미스터리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