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상위 문서, top1=KBO 리그)] ||<-5><table align=center><table bordercolor=#151B54><tablewidth=100%><#151B54><:>[[KBO 리그|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1280px-KBO_League.svg.png|width=150]]]] [br] '''[[KBO 리그|{{{#ffffff KBO 리그}}}]] {{{#ffffff 역대 시즌 일람}}}''' || ||<width=30%><:> [[한국프로야구/1997년|1997년 시즌]] ||<:> {{{+1 ←}}} ||<width=30%><:> '''1998년 시즌''' ||<:> {{{+1 →}}} ||<width=30%><:> [[한국프로야구/1999년|1999년 시즌]] || ||<:><tablealign=right> '''기간''' || [[1998년]] [[4월 11일]] ~ [[1998년]] [[10월 30일]] || ||<:> '''참가팀 ''' ||[[해태 타이거즈]], [[OB 베어스]], [[롯데 자이언츠]], [[현대 유니콘스]],[BR] [[삼성 라이온즈]], [[쌍방울 레이더스]], [[LG 트윈스]], [[한화 이글스]] 이상 8개팀. || ||<:> '''스폰서 ''' || 올스타전 : [[코카콜라]] [BR] 포스트시즌 : [[현대자동차]] 아토스 || [목차] == 개요 == 1998년에 열린 프로야구 시즌. 팀당 126경기씩 총 504경기가 열렸다. [[1997년 외환 위기]]와 양대 재벌그룹인 현대, 삼성의 [[돈지랄]]로 설명이 가능한 시즌. [[현대 유니콘스]]는 엄청난 현금을 동원해 [[박경완]], [[조규제]], [[전준호(1969)|전준호]], [[박종호(1973)|박종호]] 등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전력을 보강했고, '''돈대'''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결국 우승했다. 이는 '''인천 연고 야구단의 최초 우승'''으로 [[삼청태]] 이래 17년만의 우승이다. 이에 충격을 받은 [[삼성 라이온즈]]는 [[김상진(1970)|김상진]], [[김기태(1969)|김기태]], [[김현욱(야구)|김현욱]], [[임창용]]을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하지만 정작 우승은 '''[[2002년 한국시리즈|4년 후]]'''에 했다. 한편 [[외국인 선수]] 제도가 처음 도입되어 [[OB 베어스]]의 [[타이론 우즈]]가 42홈런으로 기존 [[한국프로야구/1992년|1992년]] [[장종훈]]의 41홈런의 기록을 경신했다. 당초 [[이승엽]]이 장종훈의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유력했으나 8월 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진 사이 우즈가 OB의 잔여경기가 많이 남아있는 상황을 잘 살려서 무섭게 홈런포를 쏘며 이승엽을 추월했다. 그 외에 [[현대 유니콘스]]의 [[스캇 쿨바]] 역시 괜찮은 활약으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. ~~하지만 V9의 해태는 [[숀 헤어]]를...~~ 이와 더불어 [[선발 투수]] 예고제가 이 시즌부터 처음으로 시행되었다. 그리고 스폰서가 처음으로 도입된 시즌이기도 하여 올스타전에는 [[코카콜라]]가, 포스트시즌에는 [[현대자동차]] 아토스가 스폰서로 되었다. 이 해와 다음 해는 화요일에 휴식을 가져 수~금 3연전, 토~월 3연전 후 화요일 휴식을 시행했다. 1995년 540만 관중으로 정점을 찍은 총관중수는 1996년 449만, 1997년 390만명으로 감소를 겪은 뒤 1998년에는 300만 관중도 채우지 못하고 263만 3119명의 총관중에 그쳤다. [[IMF 외환위기]]의 영향도 있으나 같은해 프로축구의 관중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. 메이저리그의 [[박찬호]]와 일본프로야구의 [[선동열]], [[이종범]] 등의 경기가 국내에 중계되면서 국내프로야구의 인기는 떨어졌다. == 정규시즌 최종순위 == ||<#0066b3> '''{{{#white 순위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팀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경기수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승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패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무승부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게임차}}}''' ||<#0066b3> '''{{{#white 승률}}}''' || ||<#FFD700> 1 ||<#FFD700> [[현대 유니콘스]] ||<#FFD700> 126 ||<#FFD700> 81 ||<#FFD700> 45 ||<#FFD700> 0 ||<#FFD700> - ||<#FFD700> 0.643 || ||<#FAE7A6> 2 ||<#FAE7A6> [[삼성 라이온즈]] ||<#FAE7A6> 126 ||<#FAE7A6> 66 ||<#FAE7A6> 58 ||<#FAE7A6> 2 ||<#FAE7A6> 14.0 ||<#FAE7A6> 0.532 || ||<#FAE7A6> 3 ||<#FAE7A6> [[LG 트윈스]] ||<#FAE7A6> 126 ||<#FAE7A6> 63 ||<#FAE7A6> 62 ||<#FAE7A6> 1 ||<#FAE7A6> 17.5 ||<#FAE7A6> 0.504 || ||<#FAE7A6> 4 ||<#FAE7A6> [[OB 베어스]] ||<#FAE7A6> 126 ||<#FAE7A6> 61 ||<#FAE7A6> 62 ||<#FAE7A6> 3 ||<#FAE7A6> 18.5 ||<#FAE7A6> 0.496 || ||<#FFC0CB> 5 ||<#FFC0CB> [[해태 타이거즈]] ||<#FFC0CB> 126 ||<#FFC0CB> 61 ||<#FFC0CB> 64 ||<#FFC0CB> 1 ||<#FFC0CB> 19.5 ||<#FFC0CB> 0.488 || ||<#FFC0CB> 6 ||<#FFC0CB> [[쌍방울 레이더스]] ||<#FFC0CB> 126 ||<#FFC0CB> 58 ||<#FFC0CB> 66 ||<#FFC0CB> 2 ||<#FFC0CB> 22.0 ||<#FFC0CB> 0.468 || ||<#FFC0CB> 7 ||<#FFC0CB> [[한화 이글스]] ||<#FFC0CB> 126 ||<#FFC0CB> 55 ||<#FFC0CB> 66 ||<#FFC0CB> 5 ||<#FFC0CB> 23.5 ||<#FFC0CB> 0.455 || ||<#FFC0CB> 8 ||<#FFC0CB> [[롯데 자이언츠]] ||<#FFC0CB> 126 ||<#FFC0CB> 50 ||<#FFC0CB> 72 ||<#FFC0CB> 4 ||<#FFC0CB> 29.0 ||<#FFC0CB> 0.410 || 이 시즌부터는 승률 계산 방식이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사용한 '승리/(경기수-무승부)' 공식으로 환원되었다. 이 공식은 다승제를 사용한 [[한국프로야구/2003년|2003년]], [[한국프로야구/2004년|2004년 시즌]]을 제외하고 [[한국프로야구/2007년|2007년 시즌]]까지 사용된다. [[현대 유니콘스]]가 126경기 체제에서는 사상 최단경기인 '''111경기'''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. ~~본격 [[한국프로야구/1994년|1994년 시즌]] LG에 대한 복수~~[* 무승부 없이 81승 45패] 시즌 초반부터 일찌감치 치고 나간 현대의 [[양민학살]] 덕에 [[한국프로야구/2002년|2002년 시즌]]과는 반대로 승률 디플레가 심했다. 당장 정규리그 2위 삼성과 승률은 1할 이상, 경기차는 무려 14경기 차이로 벌어졌고, 준우승팀이자 정규리그 3위 LG가 5할을 간신히 넘겼고[* 이것도 7월에 5위까지 [[DTD|떨어졌다가]] 시즌 후반 [[주니어 펠릭스]]가 뒤늦게 가세한 타선의 힘과 다승왕 '''[[김용수]]'''의 대활약으로 올라온 것.] 4위 OB는 5할도 못되는 승률로 가을잔치에 초대받았다. 여기에 시즌 막판 중위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 역시 볼만했는데, 3위 LG, 4위 OB, 5위 해태 간 경기차가 각각 1경기 차로 최종순위가 결정되었고, '''시즌 마지막 경기'''에서 OB와 해태의 [[단두대 매치]] 2연전으로 최종 4위가 결정되었다. 여기서 1무만 해도 가을잔치에 참가 할 수 있던 해태는 막판에 허무하게 2연패를 당하며 결국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.[* 이게 OB 입장에서는 진짜 극적이었는데 사실 OB는 시즌 종료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9월초에 꼴찌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많은 우천취소로 인한 많은 잔여경기에서, 그것도 홈경기보다 원정경기가 훨씬 많은 일정에서 [[타이론 우즈]]와 [[김동주(타자)|김동주]]의 활약으로 최대한 승수를 벌었음에도 이전 6경기 포함해서 8경기를 남겼을때 8연승을 해야만 무조건 가을잔치 합류였다. 즉 한 경기라도 지면 무조건 탈락. 사실상 가능성이 희박했는데 '''기어이 8연승을 거두며 기적적으로 4위에 올라 준플레이오프에 합류하고 만다.''' 미디어가 발달된 요즘같으면 OB의 기적이니 뭐니하면서 언론사가 시끄러울만한 사건. 그러나 OB는 이 와중에 있었던 구단 버스 전복 사고의 여파로 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했다.][* 반면 해태의 경우 8월 중순 꼴찌 및 -13의 승패마진을 극복하며 [[이대진]]-[[이강철]]-[[최상덕]]의 쓰리펀치를 앞세워 8~9월의 대반전으로 극적으로 4위에 올라 OB와의 마지막 2연전 중 1무만 해도 4위 확보는 물론이고 2경기를 모두 가져갔을 경우 LG를 끌어내고 3위 자리까지 넘볼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. 하지만 OB와의 첫 번째 경기에서 패했고,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는 어떻게든 이겨보기 위해 [[임창용]]을 3회에 조기 투입시키는 초강수를 뒀으나 11:5로 대패하며 최종순위 5위로 내려앉았다.] 그리고 IMF 여파를 제대로 맞아 주축 선수들이 빠져나가 몇 년 간 하위권에서 맴돌던 해태는 결국 [[기아자동차]]에 인수된 뒤 [[KIA 타이거즈]]로 간판을 바꿔달고 2002년에야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된다.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이 [[현대그룹|현대]], [[삼성그룹|삼성]], [[LG그룹|LG]] 등 최상위권 재벌이라는게 특징. 이 세 팀은 공격력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이들만 팀 600득점을 넘겼다. 반면 전년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[[해태 타이거즈]]와 [[쌍방울 레이더스]]는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4강에 탈락. 해태와 쌍방울은 자금난으로 외국인과 계약하지 않았고 해태는 꼴찌 추락 충격에 뒤늦게 [[숀 헤어]]를 데려왔지만 망했다. 시즌 중 감독을 교체한 팀이 두 팀이나 있었다. 롯데는 6월 최하위에 처지자 [[김용희]] 감독을 경질하고 [[김명성]]을 대행으로 임명했고 한화는 치열한 4위 경쟁중임에도[* 전반기 한화는 4위 쌍방울에 반게임차 5위였다.][* 한화는 시즌 전 현대, OB와 함께 우승후보로 언급됐다. 1990년대 중반 투수력에 비해 현저히 부족했던 공격력을 [[마이크 부시]]와 [[조엘 치멜리스]]의 영입으로 [[장종훈]]에 대한 견제가 줄어들고 강했던 투수진과 함께 전력이 급상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. [[구대성]]과 [[이상목]], [[한용덕]]이 고군분투했으나 [[송진우(야구)|송진우]], [[정민철]]이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 무엇보다 부시가 초반 반짝 이후 부상으로 드러눕는 등 최악의 모습을 보이면서 그 예상은 어긋나고 말았다.] [[강병철]]을 올스타전 경기일에 경질하고[* 경질 시점은 한화가 4위 쌍방울과 0.5경기차 5위로 치열하게 순위경쟁을 펼치던 시점이었다.] [[이희수(야구)|이희수]]를 대행으로 세웠다. 감독교체의 효과는 있어서 롯데는 8월의 상승세로 잠시 4위에 반경기차 5위까지 올라갔고 한화 역시 막판까지 4위를 지켰다. 하지만 두 팀 모두 뒷심 부족으로 나란히 한화는 7위, 롯데는 8위로 마감했다. 양 팀은 다음해 [[1999년 한국시리즈]]에 진출했다. == 신인드래프트 == [[한국프로야구/1999년/신인드래프트]] == 포스트시즌 == [[한국프로야구/1998년 포스트시즌]]으로 이동. == 다른 시즌 보기 == [include(틀:KBO 리그 시즌)] [[분류:KBO 리그/시즌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