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상위 문서, top1=한국프로야구/1982년)] [include(틀:역대 KBO 신인 드래프트)] [목차] == 개요 == 프로야구 출범이 결정되고 [[한국프로야구/1982년|개막]]을 앞둔 [[1982년]] 초에 대다수의 팀이 선수 영입을 마쳤으나, 팀간 전력 불균등 등의 이유로 [[1982년]] [[2월 13일]]에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2021300329209008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82-02-13&officeId=00032&pageNo=9&printNo=11193&publishType=00020|연고지에 관계 없는 2차 지명을 실시]]했다. [[OB 베어스]]를 제외하고 나머지 5개팀만 지명했다. 사실 이 해부터 1986년도 신인 드래프트(1985년 시행)까지는 1, 2차지명의 구분이 의미가 없었다. 1985년도까지는 1차지명이 무제한, 1986년에는 10명이었기 때문. == 지명 결과 == 이름 가나다 순으로, ※표시가 붙은 선수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았다. || [[MBC 청룡|MBC]] || [[롯데 자이언츠|롯데]] || [[삼미 슈퍼스타즈|삼미]] || [[삼성 라이온즈|삼성]] || [[해태 타이거즈|해태]] || || 조호[br](대구상고-성균관대-한국화장품,[br]내야수) || 김형운[br](세광고-동국대-실업롯데,[br]내야수)[br]※ || 신현석[br](배문고-인천체전-포철,[br]외야수)[br]※ || '''[[장태수(1957)|장태수]]'''[br](대건고-상업은행,[br]내야수) || 김용만[br](경북고-건국대-실업롯데,[br]포수) || || || [[방기만]][br](성남고-건국대-한국화장품,[br]투수) || 유제룡[br](휘문고-상업은행,[br]외야수)[br]※ || 조규식[br](대구상고-영남대-제일은행,[br]투수)[br]※ || 홍희섭[br](중앙고-성균관대-농협,[br]내야수)[br]※ || || || 이진우[br](철도고-홍익회-상업은행,[br]투수) || || 홍경태[br](부산상고-한일은행,[br]외야수)[br]※ || || || || 정문섭[br](동대문상고-실업롯데,[br]외야수) || || || || == 드래프트 평가 == * [[삼성 라이온즈]]의 [[장태수(1957)|장태수]]가 초기 삼성 외야진의 한 축을 이루며 활약해주었다. 사실 장태수를 제외하면 각 팀에서 주전급으로 자리잡았다 할 수 있는 선수가 전무하다.(...) 그나마 롯데의 이진우가 스윙맨으로 그럭저럭 활약한 바 있다. == 이모저모 == * MBC에 지명된 조호와 해태에 지명된 김용만은 원래 1981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81122500209208019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81-12-25&officeId=00020&pageNo=8&printNo=18532&publishType=00020|연고팀인 삼성에 입단할 예정이었으나]] 1982년이 돼서는 빠졌다. * 삼성에 지명된 조규식은 역대 신인 지명에서 가장 많이 지명받은 선수다. 삼성은 이때 이후로도 3년간 신인드래프트에서 매번 조규식을 지명하면서 총 '''4번'''이나 지명했다. 그럼에도 조규식은 제일은행에 남아 선수 생활을 마쳤다. 이 때만 해도 1차지명의 효력이 오래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, 1차지명 숫자에 제한이 생기면서 지명권의 효력이 영구화된다. * 삼미에 지명된 신현석은 포철에 잔류해 1983년부터 [[포항제철 야구단]]의 감독 겸 선수를 맡아 선수 은퇴 후로도 야구단이 해체될 때까지 감독을 맡았다. * 삼미에 지명됐지만 입단하지 않은 유제룡은 이후 [[한국프로야구/1984년/신인드래프트|1984년 지명]]에서 MBC의 1차 지명으로 프로에 들어왔다. [[분류:KBO 드래프트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