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external/tv03.search.naver.net/yonhapnews_28442316.jpg|width=150]] 韓建洙 1921년 8월 10일 ~ 1994년 8월 5일 (향년 72세) 대한민국의 전 기자, 정치인이다. 호는 봉암(鳳巖)이다. 1921년 [[충청남도]] [[예산군]]에서 태어났다. [[일본]] [[와세다대학]] 법학부에서 유학한 다음 여러 언론사에서 [[기자]]로 활동하였다. 1950년 [[제2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. 이후 자신의 이름 건(鍵)을 건(建)으로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78031000209203003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78-03-10&officeId=00020&pageNo=3&printNo=17363&publishType=00020|개명하였다.]] 1963년 [[제6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국민의당(1963년)|국민의 당]] 후보로 충청남도 예산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67년 [[제7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신민당(1967년)|신민당]]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. 그러나 개표부정으로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67062400209207024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67-06-24&officeId=00020&pageNo=7&printNo=14057&publishType=00020|예산군 선거관리위원장을 기소하였다]]. 이 선거 소송은 3년을 넘게 질질 끈 끝에 1970년 12월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70122400209201003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70-12-24&officeId=00020&pageNo=1&printNo=15143&publishType=00020|박병선의 당선 무효 판결이 났다]]. 그러나 제7대 국회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아서 재선거는 치러지지 않았다.--[[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해|선거소송에서 승소했는데 왜 재선거를 못해]]-- 1971년 [[제8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같은 해 신민당 원내부총무를 역임하면서 민주공화당 원내부총무이자 인접 지역구(홍성군-청양군) 국회의원인 [[장영순]]과 자주 교류하였다. 1973년 [[제9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예산군-[[홍성군]]-[[청양군]]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같은 해부터 1974년까지 신민당 정치훈련원장을 역임하였다. 1976년 [[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]] 때 비주류로서 [[이철승]]을 지지하였다. 1978년 [[제10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도 신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80년 [[전두환]]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.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어 '신민주당'을 창당한 바 있었다. 1985년 [[제12대 국회의원 선거]]에 [[신한민주당]] 후보로 충청남도 예산군-홍성군-청양군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[[민주정의당]] [[최창규(정치인)|최창규]] 후보와 [[민주한국당]] [[김성식(1938)|김성식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[[분류:대한민국의 불교 신자]][[분류:예산군 출신 인물]][[분류:기자]][[분류:기자 출신 정치인]][[분류:제6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9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10대 국회의원]][[분류:국민의당(1963년) 국회의원]][[분류:민중당(1965년) 국회의원]][[분류:신민당(1967년) 국회의원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