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학성 이씨]] [목차] == 개요 == 학성 이씨는 조선 시대초의 [[문신]](文臣)이자 최초의 [[조선 통신사]](通信使)이며 대일 외교 전문 외교관이었던 충숙공 이예가 시조로써 학성은 오늘날의 울산의 옛 지명이다. == 역사 == 시조 이예(李藝, 1373년 ~ 1445년)의 선대는 고려조 명문 [[귀족]]으로 [[고려]]말 불사이군[不事二君]의 충절을 지켜 울산으로 낙향하였고 그의 가문 전체가 조선건국에 반하였음으로 가문 구성원들이 아전의 신분으로 강등되었고 이예 역시 이를 면하지 못하였다.[* 1668년에 학성이씨 족보와 기록들을 재정리하는 과정에서 이예의 선대가 고려조 명문가였던것은 확실한것으로 밝혀졌지만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이예 이전 선대의 기록들이 다수 소실되어 현재로써는 이예의 선대에 대해 자세히 알길이 없다] 그는 1396년(태조 5) 왜적에게 잡혀간 지울산군사 이은(李殷) 등을 시종한 공으로 아전의 역에서 면제되고 벼슬을 받고 중앙 [[사대부]]의 반열에 들어섰고 그를 비롯 가문 구성원들은 [[양반]]으로 복권되었다. 1401년(태종 1)처음으로 이키도[壹岐島]에 사신으로 가 포로 50명을 데려온 공으로 좌군부사직에 제수되었다. 1410년까지 해마다 통신사가 되어 삼도에 왕래하면서 포로 500여 명을찾아오고, 정 4품 호군으로 승진하였다. 1416년 유구국(琉球國)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포로 44명을 찾아왔고, 1419년(세종 1) 중군병마부수사(中軍兵馬副帥使)가 되어 삼군도체찰사 이종무(李從茂)를 도와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기도 하였다. 1422·1424·1428년·1432년에 회례부사(回禮副使)·통신부사·회례정사(回禮正使)가 되어 일본에 다녀왔다. 1438년 첨지중추원사(僉知中樞院事)로 승진한 뒤 대마도경차관이 되어 대마도에 다녀왔다. 1443년에는 왜적에게 잡혀간 포로를 찾아오기 위해 자청해, 대마주체찰사(對馬州體察使)가 되어 다녀온 공으로 동지중추원사(同知中樞院事)에 이르렀다. 이후, 세종 30년에 충숙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. 이후 그의 아들 [[수군절도사]](水軍節度使) 이종실(李宗實)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울산의 [[사족]]士族이 되었고, 이예(李藝)의 또다른 아들이었던 이종근(李宗根)의 후손들 역시 [[사족]]士族으로 전환 하게 된다. 또한 [[임진왜란]]때는 울산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군공을 세운 무관들도 많이 배출해내었으며 가문일원들이 전시 조정에도 [[사대부]]로써 대거 진출하였고 임진왜란중 충의 6의사를 배출하여 충의의 가문이라 불리며 가문 인물들중 선무[[공신]]이 나오는등 가문의 위상을 떨쳤다. 임진왜란 이후에 학성이씨는 [[사족]]士族으로써 울산에서 향촌사회의 지배질서를 다시금 확립하고 재건하는 중심역활을 하였고, 현종 시기에 가문일원들이 다시 중앙 정계에 대거 등용 되었다. 또한 현종때 남인의 핵심 인물을 배출하며 정국을 주도하였다. 숙종때는 울산의 대표적 [[남인]]계열 [[사족]]士族가문으로써 1694년 [[숙종(조선)|숙종]]으로 부터 구강(鷗江)이라는 사액을 받아내고 구강서원의 건립을 주도하여 울산 제일의 [[사족]]士族이 되었고, 1737년 영조때에는 시조 이예李藝의 위패를 모신 석계서원이 울산에 건립되었을 정도로 조선 후기에 학성이씨는 울산에서 가장 많은 고위직 사대부들을 배출한 제일의 명문 [[사족]]이자 덕망있는 [[남인]]계 [[유림]]들의 가문으로 그 명성이 매우 높았다. === 여담 ===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를 1명 배출하였다. 조선시대에 다수의 무과 급제자들을 배출하였다. 임진왜란때 가문의 일원들이 대거 등용되었다. 임진왜란 때 경남 지역의 의병장을 여럿 배출했다. 임진왜란때 [[선무공신]]을 배출하였고 충의 6의사를 배출하여 충의의 가문으로 명망이 높았다. 조선 후기(현종,숙종과 영,정조 시기)에 영남의 남인계 유림으로 주목 받아 조정에 대거 등용되었다. == 집성촌 == 집성촌으로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읍과 울산광역시 북구 달천동, 울산광역시 북구 농소동, 양산시 주남동(과거 웅촌면)의 주남 마을이며 현재도 그의 후손들이 집성촌 마을에 살아가고 있다. 2015년 기준으로 전국의 학성 이씨는 16000명정도이며 그들 중 대다수가 울산광역시, 부산광역시, 양산시 주남동에 거주하고 있다. == 분파 == 현령공파 월진공파 부정공파 봉사공파 농소파(석정공파) 곡강파 == 유명 인물 == 학성 이씨 집안 중 가장 유명 인물로는 [[박정희]] 정권 당시 [[중앙정보부장]]등을 역임한 [[이후락]]이고, [[노무현]] 정권 당시 [[공군참모총장]]을 역임한 [[이한호]], [[이명박]] 정권 당시 [[고용노동부장관]]을 역임한 [[이채필]] 연예인 [[이예은]] 추구선수 이근호 등이 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