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역대 독일 대통령)] [include(틀:무궁화대훈장)] ||<-2><tablealign=right>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Bundesarchiv_Bild_146-1994-034-22A%2C_Heinrich_L%C3%BCbke.jpg|wid=300&height=400]] || || '''풀네임''' ||'''Karl Heinrich Lübke'''(카를 하인리히 뤼프케) || || '''출신 정당''' ||[include(틀:독일 기독교민주연합)] || || '''생몰년''' ||[[1894년]] [[10월 14일]] ~ [[1972년]] [[4월 6일]] || || '''재임기간''' ||[[1959년]] [[9월 13일]] ~ [[1969년]] [[6월 30일]]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독일의 정치인으로, 테오도어 호이스의 뒤를 이어 [[서독]]의 2대 대통령을 지냈다. == 생애 == [[독일 제국]] [[프로이센 왕국]]의 [[베스트팔렌]] 주에서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났다. 정말 빈곤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으로 알려져있으며, 측량사로 활동하다가 [[1차대전]] 시기에 입대하여 [[중위]]로 전역한다. 이후 1930년 [[가톨릭 중앙당]]에 입당하면서 정계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933년 [[아돌프 히틀러]]가 집권한 이후 [[수권법]]을 발의함에 따라 중앙당은 해산되었고, 뤼프케는 공금을 [[횡령]]한 혐의로 투옥된다.[*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긴 했다. 그런데 무려 20개월이나 투옥시킨걸 보면 나치가 어떻게는 뤼프케를 가둬두려고 무진 애를 쓴듯...] 이후 [[2차대전]] 시기에는 [[알베르트 슈페어]]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각종 군사시설 공사를 담당하는 일을 맡았으며, 이로 인해 나치의 협력자가 아니냐는 루머도 오늘날까지 심심찮게 돌고 있다.[* 한국에 알려진 것과 달리 2차대전 직후 독일에서 나치 경력 자체는 정말 악질적인 경우만 아니라면 사회생활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. 당장 3대 서독 총리였던 [[쿠르트 키징어]]도 [[괴벨스]]의 악명높은 선전부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. 독일에서 오늘날과 같이 철저한 과거사 반성과 나치 청산 움직임이 벌어진 것은 [[68 혁명]] 이후의 일.][* [[동독]]에 의해 뤼프케가 나치 강제수용소의 책임자라는 루머까지 제기된 상황이다.] 종전 후에는 다시 정계에 복귀하여 중앙당을 계승한 [[기민당]]에 가입하였으며 고향이었던 [[노르트라인-베스트팔렌]] 주의 농업장관을 담당하다가 [[콘라트 아데나워]]에 의해 중앙 정계까지 발탁되어 연방 정부 차원의 농업장관으로 임명된다. 그다지 정치적이지 않았던 그의 성향에 주목한[* 독일 현재 헌법상 국가원수는 대통령이다. 그렇지만 [[바이마르 공화국]] 시기 워낙 호되게 데였던 탓에 실질적인 권력은 전무한 상황.] 콘라트 아데나워는 1959년 [[테오도어 호이스]]의 후임 대통령을 결정할 선거의 기민당 측 후보로 뤼프케를 지명하였으며, 의회에서 기민당이 다수를 점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뤼프케는 어렵지 않게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었다. 상술했듯이 독일의 대통령직은 명예직이었기 때문에 실권은 그의 임기 중 총리였던 [[콘라트 아데나워]]와 [[루트비히 에르하르트]], [[쿠르트 키징어]]에게 있어서 별다른 눈에 띄는 행적은 없었지만 어쨌든 무난히 대통령 임기를 수행하다가 ~~가만히 있는게 원래 제일 힘든 법~~ 1969년 임기 만료를 3개월 앞두고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임한다.[* 사실 건강 악화가 아니더라도 사임 3달 후 있었던 총선에서 사민당이 집권했기 때문에 그리 오래 자리를 유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.] 후임으로는 [[독일 사민당|사민당]]의 구스타프 하이네만이 취임하게 된다. 사임 3년후인 1972년 뤼프케는 서독의 수도였던 [[본(독일)|본]]에서 세상을 떠난다. == 여담 == * 무척이나 말이 느렸던 인물이다. 당연히 정치인으로는 치명적인 단점. 한번은 연설 중에 그가 자꾸 사람의 이름을 더듬자 답답해진 청중들이 친절히 소리쳐서 알려주었다고(...) ~~캐굴욕~~ * 실제있었던 일인지 단순한 유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뤼프케식 영어(Lübke-Englisch)라는 에피소드가 유행하기도 했다. 간략히 설명하자면 문맥, 숙어 같은 것은 죄다 무시하고 단어 단어마다 끊어서 번역을 한 문장을 말하는 건데 ~~[[번역기]]~~ 다음과 같다. > 뤼프케가 [[엘리자베스 2세]]와의 회담을 가질 때의 일이었다. 접견 과정에서 둘은 [[경마장]]을 들리게 되었는데 뤼프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었다. > > ''이제 곧 (경마가) 시작할 것입니다." 이 문장을 독일어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. "Gleich geht's los." > > 영어로 옮기자면 "Soon it will begin" 정도로 옮겨야 됐지만, 영어가 짧았던 뤼프케는 단어 단어마다 끊어서 번역을 했고,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괴랄한 영어 문장이 완성됐다. > > "Equal[* 독일어로 gleich는 '곧'(soon)이라는 의미와 더불어서 '같다'(equal, same)라는 의미도 있다.] goes[* 독일어 문장의 geht로 '가다'라는 의미이다.] it[* 독일어 문장의 's(es)] loose.[* 독일어 문장의 los. 원래는 독일어에서 geht와 los가 합쳐져서 '시작하다'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단어 하나 하나를 끊어서 옮기다보니(...)]" > > (...) * [[1967년]] [[3월 2일]] [[박정희]] 대통령의 서독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. 이는 독일 뿐만 아니라 [[유럽]]의 국가원수로서는 최초의 방한 이었다.[[https://youtu.be/YONFqnp7Vh0|뉴스]] [[분류:독일 대통령]][[분류:1894년 출생]][[분류:1972년 사망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