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1920px-Hainan_in_China.svg.png|width=300]] [[파일:Hainan_tmo_07feb05_250m.jpg|width=300]] 海南 / Hainam([[민어(언어)|민어]]) / Hǎinán([[보통화]] [[한어병음]]) [목차] == 개요 == [[중국]] 최남단에 위치한 [[섬]]이다. [[베트남]]이나 [[필리핀]] 북부와 위도가 비슷한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[[동남아시아]]로 간주되기도 한다. 이곳은 [[중원]]과 극히 멀며 기후도 중원과 달리 [[사바나]]성 기후이다. 행정구역 상으로는 [[하이난성]]. 서쪽 바다 건너편에 베트남이 위치해 있다.약칭은 경(琼, Qióng, 정체자로는 瓊). 과거 이 지역을 경애(瓊崖), 경주(瓊州)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다. [[구글 지도]] 한국어판에서는 '에노'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나온다. 영어로는 Hainan이라고 제대로 나온다. 모종의 이유로 [[벨기에]]의 불어권 에노(Hainaut) 주[* 한국어로 '에노'로 발음된다.]와 혼동된 것 같다. 사실 구글 지도 한국어판은 발음들이 워낙 엉망이라 그냥 영문판으로 보는 게 더 속 편하다. == 지리 == 섬의 넓이는 33,210km²로 [[경상도]]보다 조금 크며 [[타이완 섬]]보다는 약간 작다. 이름의 유래는 그냥 이름 그대로다. 바다(海)의 남쪽(南). 진짜 심플하다. [[중국]]에서 가장 넓은 섬이다.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은 [[대만 섬]]을 자기네 영토라 주장하므로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저렇게 말하지 않고 두 번째로 큰 섬이라고 한다. 섬 최고봉이 우즈산(五指山)이다. == 기후 == 섬의 남부는 [[중국]] 대륙에서 얼마 안 되는 [[열대기후]], 정확하게는 [[사바나기후]]에 속한다. 북부 하이커우는 1월 평균기온이 17도, 남부 싼야는 19도로 겨울이 없고 4철 내내 덥고 습하다. 북부 [[베트남]]과 같다.[* 그런데 [[지구온난화]]의 영향으로 사실상 이 섬 전체, 더 넓게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[[홍콩]], [[마카오]]보다 남쪽에 위치한 거의 모든 지역이 [[열대기후]]가 되다시피했다고 보면 된다. 참고로 [[대만]]도 북부는 아열대, 남부는 열대기후이다. 열대기후 지역에 있는 대만의 대도시로는 [[가오슝]]이 있다.] 기후가 [[열대기후]]인 만큼 [[태풍]]도 자주 상륙한다. == 인구 == 인구는 870만 명 정도로 인구밀도는 상당하지만 [[대만 섬]]보다는 낮은 편이다. ~~아니 사실 대만이 비정상적으로 높다~~ 섬 인구의 80%가 [[한족]]이고, 다음이 [[태국|타이]]족과 연관 있는 이 섬의 원주민인 리(黎)족으로 15% 정도로,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섬 전체 면적의 절반을 넘는다. == 언어 == 리어와 [[민어(언어)|민어]]를 쓰는데[* 민어는 [[푸젠성]] 쪽 방언으로 [[민남어]]/[[대만어]]가 여기 속한다.] 하이난어라고도 한다. [[대만어]]라 불리는 민남어와 같은 민어 계열이지만 [[푸젠성]] 및 [[대만]] 등지의 다른 민어 방언들과 전혀 대화가 안될 정도로 차이가 심하다. 사실 이 곳의 경우 섬의 특성 상 홀로 동떨어져 있어 민북어나 민남어 등 타 민어 계열과는 이질적이 되었고 그나마 [[광동성]] 동부 차오저우 지역의 [[치우차우]]와 조금 가깝지만 이들과도 이질화되었다. 또한 여러가지 사료를 보았을 때 중세 및 근세까지는 리어나 민어 말고도 [[오스트로네시아어]] 계통의 언어도 일부 쓰였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. 우선 이 지역의 소수민족인 리족은 [[태국인]]과 동계이다. 오스트로네시아어 사용 종족들은 근세 이후 남하해 전부 [[필리핀]], [[인도네시아]], [[브루나이]] 등으로 이동한 듯 하다. 물론 통용어는 중국 본토 전 지역이 다 그렇듯 [[표준중국어]]로 표준중국어가 모어는 아니더라도 다들 교육을 받았으면 할 수 있다. == 역사 == 기원전부터 백월의 일파였던 [[여족]]이 살던 땅이었고[* 다만 21세기 들어 [[여족]]이 원래 토착민이 아닌 중국 남부로부터 들어온 민족이었다는 얘기가 학계에서 슬슬 나오고 있기는 하다. 물론 그런 식이면 구 대륙인 아시아에서 넘어갔다고 보이는 [[아메리카 원주민]]들도 대부분은 원주민이 아니라는 소리라 크게 중요하지 않다. 여족을 하이난 섬 원주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.], 기원전 3세기 초에 [[남월]]에 의해 정복당하며 기원전 110년경까지는 본토의 [[광둥성]] 및 [[광시좡족자치구]], 그리고 북부 [[베트남]]과 함께 남월의 영토였다. 이후 남월이 [[한나라]]의 정복군주 [[한무제]]에 의해 멸망하면서 한나라의 군현으로 편입되어 중국사의 범위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. 그러나 [[한무제]] 정복 당시의 인력은 버티지 못하고 철수했고, [[삼국시대]]에는 [[손권/인간 사냥|손권이 이곳으로 인간 사냥을 보내기도 했다]]. [[육손]]이 반대했지만 강행했는데 득보단 실이 컸다.[* 오나라는 이 때 [[대만]]과 [[류큐]] 심지어 [[일본 열도]] [[큐슈]] 남단까지 정벌했으나 모두 실패했다. 특히 손권의 인간 사냥은 [[한족]]의 대만 진출 시도 첫 사례이기도 하다.] [[오나라]]의 지배는 느슨했고, 하이난이 좀 더 중국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건 약간 더 뒤였다. 이 곳은 한나라 시절부터 지금의 중국 북중부에 국한되었던 전통적 의미의 [[중원]]에서 너무 멀었기 때문에 변방 중의 변방, 오랑캐의 땅, 유배지 취급을 받았다. 이후로는 [[주애]](珠崖)나 경애(瓊崖)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유배지로서 [[소동파]]가 이 곳으로 유배오기도 하였다. [[대만 섬]]이 중국사의 범주에서 사실상 벗어나 있다가 [[청나라]] [[강희제]] 대에서야 확보되어 경영된 거와는 달리 하이난은 한나라 시대부터 비록 직접지배는 못 받았을지언정 확실히 중국의 일부로 포섭되어 광동의 부속 도서 취급을 받았으며[* 대만은 대만해협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풍랑이 심하면 배편이 끊길 정도로 접근하기가 어려웠으나 하이난은 대륙 바로 코앞에 있기 때문에 고대부터 경영되어 왔다.], 중원이나 연경, 강남 등과 한참 먼 거리 덕에 유배지로 각광을 받았다. 어느 정도냐면 하이난 유배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. 그나마 나올 희망이나 있던 본토 유배와 달리 하이난은 살아서 다신 못 나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. 극악으로 먼 거리와 극악으로 덥고 습하고 태풍이 자주 오는 기후, 그리고 배가 아니면 왕래가 불가능한 환경 때문. 이러한 극악의 고립된 환경은 파촉 지방 정도가 비견할 만 하다. 비슷한 취급을 받은 곳은 현재 [[베트남]] 중부 [[다낭]] 일대인 일남군으로 일남은 더위가 화끈한 열대 지방이며 거리도 절망적으로 멀어 아예 유배갈 때 장례식을 치를 정도였다. [[청일전쟁]]으로 대만을 먹은 뒤 [[일본 제국]]은 [[삼국간섭]]으로 [[랴오둥 반도]] 대신 하이난을 요구하려다가 포기하였다. 이유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이다. 그리고 [[1911년]] [[신해혁명]] 이후 광동군벌 등본은의 지배를 받았으나 [[1926년]]에 [[국민혁명군]] 4군 군장 [[리지선]]이 원정하여 [[중국 국민당]]의 세력권에 들어갔고 [[중국 국민당]]은 이 지역을 하이난 특별행정구라는 행정구역으로 통치했다. 그러다가 [[중일전쟁]]에서 하이난을 공격한 [[일본군]]은 중국 국부군을 대패시키고 하이난을 점령한다. 이렇게 일본군의 점령으로 [[일본 제국]]의 짧은 지배를 받다가, [[일본 제국]]이 원자폭탄 2방으로 패망하고 철수하자 중국으로 반환, 국민당이 접수한다. 그러나 [[국공내전]]에서 국민당이 대패한 후에는 [[바이충시]] 휘하 18만 대군이 넘어가, 본토에서 결판이 난 지 오래인 [[1950년]]까지도 중국 국민당이 통치했다. 대만도 그렇지만 당시 [[인민해방군]]의 빈약한 해공군 전력으로 바다 건너의 섬을 공략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. 하지만 인민해방군이 그 해 5월 1일에 민간에서 징발한 [[어선]] 수백 척을 동원하여 하이난에 상륙하여 공세를 벌이자 결국 국민당은 여기서 철수했다.[* 이곳을 접수하고 그 다음 최종 목표가 바로 [[대만 섬]] 점령이었는데, 미국이 대만해협에 군함을 파견하고 당해 6월 [[6.25 전쟁]]이 터지면서 대만 진공을 무기한 보류했다. 하이난이 몇 개월만 더 버텼다면 지금 와선 대만과 같이 공산화를 피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었다. 그러나 대만과는 달리 하이난의 바다 폭은 강 수준으로 좁아서 해군이 거의 없다시피했던 공산군도 민간 어선을 징발해 건너올 수 있었다.] [[중화인민공화국]]의 통치에 들어간 이후로 [[광둥성]]에 속해 있다가 [[1988년]] [[하이난성]]이라는 별개의 성으로 승격되었다. [[1980년]] [[중국]]의 개방 정책과 함께 [[광둥성]] [[선전시]]와 [[산터우]], [[주하이]], [[중산]], [[포산]], 산웨이, [[푸젠성]] [[샤먼시]], [[푸저우시]] 등과 함께 경제특구로 섬 전체가 지정되면서, [[1990년대]]까지는 특별행정구가 아닌 국내 경제특구임에도 중국 인민은 출입증이 필요했다. [[2010년대]] 이후 그간 듣보잡으로 외면하던 한국인들도 하이난 관광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있기 시작했으며 원래 많이 찾아오던 [[러시아인]] 관광객들의 수도 항공편 증가로 더 늘어났다. 거기에 [[2013년]] 이후 하이커우가, [[시진핑]]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[[일대일로]] 정책으로 인해, 해상 실크로드가 개발되어 중요도가 오르고 있는 추세이다. [[후베이성]]에서 시작된 [[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-19]]에서 티베트, 내몽골과 함께 그나마 조용한 몇 안되는 곳인데 바다를 건너야 하는 섬의 특성 상 그런 게 큰 듯 하다. == 관광 == 따스한 지역이라 중국에서는 관광 겸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좋은 편이다. 외국인 무비자 입국지인 한국의 [[제주도]]마냥 여기도 외국인 좀 끌어보려고 중화인민공화국 육지 쪽인 [[베이징]], [[상하이]], [[칭다오]], [[광저우]] 등 일부 지역처럼 무비자를 시행하는데 이들 지역과 달리 하이난은 여행사를 통해 신청할 경우 굳이 복잡한 절차 없이 무비자가 보장된다. 한국인들은 [[골프]] 여행 등으로 제법 많이 간다. 1년 내내 따뜻하고 그린피 싸고 꽤 오래 걸리는 [[태국]], [[인도네시아]], [[말레이시아]], [[필리핀]]보다 가까운 편이기 때문이다. 다만 한국인에게 해변 휴양지로서 하이난은 아무래도 [[태평양]] 섬들이나 [[동남아시아]]의 푸켓, 코타키나발루 등 유명 휴양지는 물론 하다못해 저가항공이 잔뜩 취항하는 [[일본]] [[오키나와]]에 비해서도 인기가 저조한 편이다. 아무래도 아직까지 홍보가 덜된 탓인 듯 하다. 사실 하이난은 [[2000년대]]까지만 해도 한국에선 듣보잡 여행지였으며 [[2009년]] 이후 이 곳을 중국의 하와이라 하며 띄우기 시작한 걸 감안해야 한다. 일단 중국 내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상당히 북적북적한 편이며 홍콩인들도 크루즈 목적지 중 하나가 하이난이라 많이 찾는 편이다. == 기타 == 한국에도 동일 지명인 [[해남군]]이 있지만, 스케일 차이가 크다. [[파일:e65bRrG.jpg]] [[배틀필드 4]]에서 [[배틀필드 4/맵#s-2.9|하이난 리조트란 이름으로 등장한다]]. 중앙에 위치한 호텔을 붕괴시킬 수 있는 Levolution이 등장한다. == 관련 문서 == * [[하이난성]] * [[둥사 군도|동사군도]] * [[남사군도]] * [[남중국해]] * [[파라셀 군도|서사군도]] [[분류:중국의 섬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