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고려의 인물]][[분류:진주 하씨]][[분류:1322년 출생]][[분류:1376년 사망]] 河允源 1322 ~ 1376 본관은 진주(晉州). 자는 담지(湛之). 호는 고헌(苦軒). 찬성사로 치사하고 진주군(晉州君)에 봉해진 [[하즙]](河楫)의 아들이다. [[충혜왕]] 때 과거에 급제하여 전교교감(典校校勘)에 보임되고, [[공민왕]] 때 홍건적이 침입하자 전리총랑(典理摠郎)으로 여러 장수를 따라 개경 수복에 종군한 공로로 2등공신이 되었다. 뒤이어 [[경상도]]·[[서해도]]·[[양광도]]·[[교주도]]의 안렴사와 원주·상주의 목사를 지냈고, [[신돈]]이 권세를 부릴 때도 아첨하지 않았다. [[우왕]] 초에는 대사헌에 제수되고 진산군에 봉해졌으나 모친상을 당해 낙향하여 시묘살이하던 중 사망했다. 우왕이 복귀를 명하였으나 교서가 이르기 전에 죽었다. 시호는 원정(元正)이다. 아들이 [[하자종]]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