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||||||||||||<tablealign=center><tablewidth=100%><:><#4eae47>'''[[도정궁#s-5|{{{#FAFAD2 도정궁의 역대 주인}}}]]''' || ||<width=30%><:> 1대 [[덕흥대원군|덕흥대원군 이초]] ||<:> {{{+1 →}}} ||||<width=30%><#4eae47><:>'''{{{#FAFAD2 2대 하원군 이정}}}''' || {{{+1 →}}} ||<width=30%><:> 3대 [[당은군 이인령]] || ---- ||<-3><tablealign=right><table width=400><tablebordercolor=#94153E><bgcolor=#94153E> {{{#gold '''조선 중종의 손자 | 도정궁 1대 사손'''[br]{{{+1 '''하원군[br] 河原君'''}}}}}} || ||<-2><width=30%><bgcolor=#94153E> '''[[군호|{{{#gold 군호}}}]]''' ||<(> 하원군(河原君)[* 군호는 [[경상남도]] [[하동군]](河東郡)에서 유래했다.]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[[시호|{{{#gold 시호}}}]]''' ||<(> 의헌(懿獻)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[[본관|{{{#gold 본관}}}]]''' ||<(> [[전주 이씨|전주]](全州)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[[이름|{{{#gold 이름}}}]]''' ||<(> 정(鋥)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[[자(이름)|{{{#gold 자}}}]]''' ||<(> 백강(伯剛)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생부}}}''' ||<(> [[덕흥대원군]]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생모}}}''' ||<(> [[하동부대부인|하동부대부인 하동 정씨]](河東 鄭氏)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부인}}}''' ||<(> 남양군부인 [[남양 홍씨]](南陽 洪氏)[br]신안군부인 [[이(성씨)|신안 이씨(新安 李氏)]]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자녀}}}''' ||<(> 9남 6녀 || ||<|2><: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생몰[br]기간}}}''' ||<:><bgcolor=#94153E> '''[[음력|{{{#gold 음력}}}]]''' ||[[1545년]][* 여담으로 [[이순신]]과 나이가 같다.] [[1월 23일]] ~ [[1597년]] [[10월 1일]] / [[10월 6일]][* 《[[선조실록]]》에는 10월 6일로, 《[[선조수정실록]]》에는 10월 1일로 적혀 있다.] || ||<:><bgcolor=#94153E> '''[[태양력|{{{#gold 양력}}}]]''' ||[[1545년]] [[2월 4일]] ~ [[1597년]] [[11월 9일]] / [[11월 14일]]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[[조선]]의 [[왕족]]. [[덕흥대원군]]의 적장남이자 [[선조(조선)|선조]]의 큰형이다. == 생애 == 1545년([[인종(조선)|인종]] 1년) 2월 4일[* 음력 1월 23일]에 [[한성부]] 서부 인달방 [[도정궁|덕흥군 사저]]에서 [[중종(조선)|중종]]의 서자 덕흥군과 부인 [[하동 정씨]][* [[세종(조선)|세종]] ~ [[세조(조선)|세조]] 대의 재상 [[정인지]]의 증손녀이자 문신 정세호의 딸이다.] 사이에서 적장자로 태어났다. 14살 때인 1558년([[명종(조선)|명종]] 13년)에 하원정(河原正) 작호를 받았고[* 작호는 외가의 본관인 [[경상남도]] [[하동군]]에서 따왔다.], 1559년(명종 14년) 아버지 [[덕흥대원군]]을 잃고 3년 상을 치른 직후 하원군(河原君)으로 봉해졌다. 1567년(선조 즉위년) 둘째 남동생 [[하성군]]이 [[선조(조선)|선조]]로 즉위하고 2년 뒤인 1569년(선조 2년)에 친부모인 덕흥군 부부를 대원군과 부대부인으로 추증했다. 이에 하원군 역시 작위 1품에 올랐고, 덕흥군 사저([[도정궁]]) 내에 [[사당]]인 '덕흥궁(德興宮)'을 세워 덕흥대원군 내외의 [[제사]]를 모셨다. 이후 이따금씩 선조가 도정궁에 직접 찾아와 제향을 모시고 연회를 베풀기도 했다. 문소전, 연은전, 종부사옹, 시원 등의 총책 직을 맡았으며 1591년(선조 24년)에는 왕실 족보의 오류를 바로 잡은 [[종계변무]]의 성사로 광국원종공신 1등이 되었다.[* 종계변무에 공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 내린 공신명.] 1592년(선조 25년) 4월에 [[임진왜란]]이 일어나자 동생 [[선조(조선)|선조]]를 호위하며 [[의주군|의주]]로 함께 피난갔다. 1597년(선조 30년)에 [[정유재란]]이 일어나자 [[왜군]]과 싸우려 '분의복수군(奮義復讐軍)'에 가담했다. == 사망과 이후 == 1597년([[선조(조선)|선조]] 30년) 가을에 [[왕실]]이 [[황해도]] [[수안군]]으로 잠시 피신할 때에 사옹원 제조로서 같이 따라 갔다가 그 해 10월에 그곳에서 사망했다. 향년 53세. 전쟁이 끝난 1599년(선조 32년) 12월 29일에 [[경기도]] [[양주군]] 남면 수락산 기슭의 아버지 덕흥대원군묘 근처에 묻혔다. 묘역과 신도비는 덕흥대원군묘와 함께 경기도기념물 제55호로 지정받았다. 1604년(선조 37년) 호성원종공신2등(扈聖原從功臣二等)이 되었으며 1758년([[영조]] 34년) [[시호]] '의헌공(懿獻)'을 받았다. 1771년(영조 47년)에 그의 신주가 영조의 명으로 덕흥궁(德興宮)에 몇 대가 지나도 꾸준히 제사를 받을 수 있는 불천지위로 정해졌다. ||<table width=550>[[파일:Hawongun_Tomb.jpg|width=100%]] || || 하원군 묘. || == 여담 == * 성격이 아버지와 별반 다른 것 같지가 않은 듯하다.(...) 생애 초반에는 주색에 빠지고 주변에 세상 모르는 망나니처럼 횡포를 부리는 등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. 하지만 이런 망나니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 자기 보신에는 이롭다. 총명하고 겸허하게 행동해봐라 자칫하면 역모 사건에 휘말릴 수 있으니 적당히 사고치면서 평판을 나쁘게 해야 자신의 목숨을 연장할 수 있었다. 국왕의 친형이래도 선조뿐만 아니라 다른 역대 제왕도 역모 사건에 민감한데. 다음은 하원군의 성품을 나타내는 기록. >'''선조실록 6권, 선조 5년 9월 14일 정유 5번째 기사.''' - '''간원이 하원군의 난행을 지적하여 파직을 청하다.''' > >간원이 아뢰기를, > >"하원군(河原君) 이정(李鋥)은 스스로 ‘왕실의 지친인데 나에게 어쩌겠는가.’라고 하여 방종하고 패망(悖妄)하여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. 헌관(獻官)>은 싫다고 피할 일이 아니고 궐정(闕庭)은 사람을 포착(捕捉)하는 곳이 아닌데 헌관에 임명된 것을 분히 여겨 색리에게 화를 내어 붙잡아다가 마구> 구타하여 자기의 분풀이를 했으니, 이 어찌 신하로서 차마 할 수 있는 일입니까. 법으로 조치하면 죄가 파직하는 데 그칠 일이 아닌데 상께서 도>리어 공론을 거절하여 오래도록 윤허하지 않으시니 어떻게 그의 기탄없는 마음을 징계하며 흉악한 습성을 근절하겠습니까. 형벌은 가까운 사람이>라도 굽히지 않는 것이 옛날의 법도입니다. 국가의 기강이 밝다면 이정은 의당 죄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. 속히 파직시키소서." > >하니, 상이 윤허하지 않았다. > >출처: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na_10509014_005|조선왕조실록.]]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종친 대표로 선조를 옆에서 모시고 왜군과 맞서는 군대에 가담한 것으로 보아 전란 이후에는 성격이 좀 누그러진 듯 하다. == 가족과 자손 == 17세인 1561년([[명종(조선)|명종]] 17년)에 [[영의정]] 홍섬의 딸인 남양군부인 홍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자녀 3남 1녀를 두었다. 그러나 25살에 사별하고 이후 증 이조판서 이의로의 딸인 신안군부인 이씨와 재혼했다. 이씨 부인 사이에서는 자녀를 두지 못했고, 소실 4명에서 6남 5녀를 두어 적, 서자녀 합쳐 총 9남 6녀를 낳았다. 장남 당은군 이인령의 가계로 [[도정궁]] 종가가 이어진다. 자세한 가계는 [[당은군(1562)|당은군]] 항목 참조. 다른 후손으로는 서3남 연성수 이복령의 12대손으로 [[대한민국]] [[국무총리]]를 지낸 [[이해찬]]이 있다. [[분류:조선의 왕자군]] [[분류:도정궁 종주]] [[분류:1545년 출생]] [[분류:1597년 사망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