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 성명 ||하용제(河龍濟) || || 자 ||은거(殷巨) || || 호 ||약헌(約軒) || || 생몰 ||[[1854년]] [[6월 29일]] ~ [[1919년]] [[11월 8일]] || || [[출생지]] ||[[경상남도]] [[산청군]] 단성면 남사리 || || [[본관]] ||[[하(성씨)|진양 하씨]] || || 사망지 ||[[경상남도]] [[산청군]] || || 추서 ||건국훈장 애족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독립운동가.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. == 생애 == 하용제는 1854년 6월 29일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서 하겸락(河兼洛)과 문화 유씨(文化柳氏) 사이에서 태어났다. 그는 17살 때 부친의 명으로 [[곽종석]]의 문하에서 사서(四書) 및 [[춘추좌씨전]] 등을 배우며 학문에 정진했고, 1872년 무과에 급제한 뒤 1884년 의정부공사관에 임명되었고, 이후 1892년까지 훈련원주부판관첨정(訓鍊院主簿判官僉正), 선전관총어영초관(宣傳官總禦營哨官), 의정부공사관(議政府公事官), 대흥군수(大興郡守), 삼척진영장(三陟鎭營將), 격포진첨사(格浦鎭僉使) 등을 역임했다. 1905년 [[을사조약]]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제에게 넘어가자 '미망인(未亡人)'으로 자처하며 산야에 은거해 세상과 인연을 끊고자 했다. 그러던 1919년 3월 [[김창숙]] 등이 주도한 독립청원서 서명운동에 유림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했다.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며칠간 감금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간신히 풀려났다. 이후 [[하동로]], 황종화(黃鍾和), 하남식(河南植) 등이 주도한 경남단(慶南團)에 가입하고 독립운동자금을 기부했지만 고문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1919년 11월 8일에 사망했다.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하용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. 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조선의 유학자]][[분류:진양 하씨]][[분류:산청군 출신 인물]][[분류:1854년 출생]][[분류:1919년 사망]][[분류:건국훈장 애족장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