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다른 뜻1, other1=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, rd1=하여가(서태지와 아이들))] [목차] == 개요 == {{{+1 [[何]][[如]][[歌]] }}} [[태종(조선)|태종 이방원]]이 포은 [[정몽주]]를 회유하기 위해서 지었다는 [[시조(문학)|시조]]. 이에 정몽주는 [[단심가]]를 통해 거절의 뜻을 전달했고, 이방원의 부하 조영규와 고여에게 개성 선지교(善地橋)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했다. 후에 그가 숨진 자리에서 대나무가 자라 [[선죽교]](善竹橋)라 했다. 한국사에서 중요하고 유명한 시조. 단심가와 묶어서 배우는 경우가 많다. [[용의 눈물]]이나 [[정도전(드라마)|정도전]]처럼 고려 말~조선 초를 다룬 사극에서 무조건 나온다. 이 시조는 단순히 정몽주 하나만을 상대했다기보다는 고려조 신하전체를 향한 경향이 있는데 위화도 회군에 동참했던 [[변안열]] 또한 불굴가라는 시로 고려에 대한 충성이 변치 않음을 표현했다. == 시 전문 == >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>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>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-[[이방원]]의 [[하여가]]- == 그 외 == [[어쩌다 어른]]에서 [[설민석]]은 '[[항우]]의 하여(何如), [[고제(전한)|유방]]의 여하(如何)'를 운운하며 이 시에서 쓰인 하여를 '[[답정너]]'라고 해석하여 하여가를 읊으면서 쇠망치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고 하는데, 한역된 판본을 보면 하여와 여하 둘 다 적혀있다. 애초에 '하여'와 '여하'는 설민석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그렇게까지 양자 사이에 차이가 있는 의미가 아니다. 설민석은 이 하여가/단심가 외에도 항우와 유방의 예를 들어 항우는 '하여'를, 유방은 '여하'를 많이 썼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. 그런데 실제 기록에서는 유방이 '하여'를, 항우가 '여하'를 많이 쓰고 있으며, 이를 바탕으로 설민석과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. [[http://cafe.naver.com/hwjseoul/626|참조.]] 사실 설민석과 링크글 둘 다 틀린 셈인데, 이처럼 서로 정반대의 해석이 나올 수도 있을 만큼 '하여'와 '여하'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... 역사적으로 볼 때, '하여'와 '여하'는 '여지하(如之何)'와 함께 상고중국어에서 서로 공존하다가 현대중국어에 이르러 '여하'로 통일되었다. 이것만 봐도 양자를 엄밀히 구분하기 어렵다... 이에 관해서는 한경숙 교수의 <'如何', '如之何', '何如'의 통사적 변천 고찰>과 같은 [[http://www.dbpia.co.kr/Journal/ArticleDetail/NODE06648015|논문]] 도 있다. [[분류:시조]][[분류:태종(조선)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