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세계각국 영화)] {{{+1 Finnish Film }}} ||<-2><tablealign=right> 기본정보 ([[2018년]]) [br] [[https://www.efp-online.com/en/members/194/Finland/Finnish-Film-Foundation|출처(EFP: 유럽 영화 프로모션)]] || || 인구 || 550만 명 || || 순수 자국생산 장편영화 || 20편 || || 관객 수 || 810만 명 || ||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 || 1.47회 || || 자국영화 점유율 || 24% || || 스크린 수 || 355개 || [목차] == 개요 == [[핀란드]]의 [[영화]]. == [[영화 시장]] ==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편수는 1.47회이다. 자국 영화 점유율은 24%이다. == 역사 == === 초기 === [[1896년]] [[헬싱키]]에서 처음으로 [[영화]]가 상영되었다. 그리고 핀란드 영화는 [[1904년]] 처음 제작되어서 굉장히 빨랐다. [[스웨덴 영화]]나 [[노르웨이 영화]]들이 죄다 [[1909년]] 이후 영화 역사가 출발했는데 핀란드 영화는 자국 영화 제작부터가 [[1904년]]이었다. [[러시아 제국]]의 영향이다. '''초기 영화들은 죄다 소실되었다.''' 때문에 [[1919년]] 이전의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 수가 없다. === [[전간기]] === [[1919년]] Suomi-Filmi라는 핀란드 영화사가 창립되며 본격적인 핀란드 영화의 시작을 알렸다. Suomi-Filmi[* [[1989년]] 마지막 영화를 찍은 후 [[1990년]] 핀란드 영화 재단에 모든 권한을 넘겨주고 [[2019년]] 지금은 영화 기술 연구소로 바뀌었다. 영화를 더 이상 찍지 않는다.] 회사에서 Erkki Karu(Erland Fredrik Kumlander, 1887-1935)라는 걸출한 [[영화 감독]]이 등장하면서 핀란드 영화는 급성장을 시작했다. [[1920년]] Erkki Karu의 첫 영화인 Ylioppilas Pöllövaaran kihlaus[* [[2020년]]에 [[핀란드]]에서 Ylioppilas Pöllövaaran kihlaus 100주년을 기념하는 [[기념우표]]와 기념주화가 나올 예정이다!([[2019년]] [[11월]] 공지를 냈다.) [[핀란드]]에 관심 있으면 노려보자.]가 나오면서 핀란드 영화는 꽃을 피운다. Erkki Karu는 [[1935년]] 사망할 때까지 20편의 영화를 남겼고, 이 영화들은 이후 [[핀란드]]의 영화 방향까지 결정했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하나 하나가 작품성이 뛰어나다. 단, 말년에 나온 2편은 작품은 뛰어났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해서 에르키 카루는 경제적 곤경을 겪었다. 에르키 카루는 [[1935년]] 마지막 영화를 남긴 이후 '''[[1935년]] [[12월 8일]] [[의문사]]'''했다. 향년 48세. 아직 한창일 나이에 의문사한 것이다. 공식 사인조차 [[2019년]] 지금까지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. 48세에 죽은 터라 에르키 카루는 자연사일 가능성은 없다. 사체 [[부검]] 결과 [[자살]]도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. 때문에 [[소련]] [[이오시프 스탈린]]의 [[암살]]설이 돌고 있다. === [[제2차 세계 대전]] === === 2차대전 전후 === === [[1990년대]] === === [[2000년대]] === === [[2010년대]] === [[유로]]존에 들어온 [[핀란드]]는 핀란드 영화를 여러편 만들고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발전해 왔다. == [[영화 감독]] == == 주요 작품 == == [[영화관]] == [[분류:핀란드 영화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