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<tablealign=center><tablewidth=100%><:><-5><#DCDCDC> '''[[남조(왕국)#s-8|{{{#000000 남조의 역대 군주}}}]]''' || ||<:><width=30%>4대 태종 위성왕 성라피 || {{{+1 ←}}} ||<width=30%><#008299><:> '''{{{#white 5대 귀의왕 피라각}}}''' || {{{+1 →}}} ||<:><width=30%>6대 [[각라봉|신무왕]] 각라봉 || ||<tablealign=center> '''[[시호]]''' || 귀의왕(歸義王) || || '''[[성씨|씨]]''' || 몽사(蒙舍) || || '''[[휘]]''' || 피라각(皮羅閣) || || '''생몰년도''' || 698년 ~ 748년 || || '''재위기간''' || 728년 ~ 748년 || [목차] == 소개 == [[남조(왕국)|남조]]의 제5대 군주. 시호는 귀의왕(歸義王). 성라피의 아들. == 생애 == 728년, 아버지 성라피(盛邏皮)가 죽자 뒤를 이어 아들 피라각이 즉위했다. 피라각은 얼하이 호에 거주하고 있던 하만(河蠻)을 축출하고, 대화성과 대리성을 점령했다. 738년, [[당(통일왕조)|당]] 조정에서는 피라각을 특진으로 제수하고 월국공(越國公)으로 책봉하였으며, 귀의(歸義)로 이름하였다. 피라각은 몽사조(蒙舍詔)의 수령(대몽의 왕)으로 검남절도사(劍南節度使) 왕욱(王昱)에게 뇌물을 주어 그의 도움을 받아 나머지 5조[* 나머지 5조는 몽수, 월석, 시랑, 등섬, 낭궁 등인데 이들은 [[토번]]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. 따라서 당 조정은 토번을 견제하기 위해 남조를 지원하였던 것이었다.]를 멸망시켜 통일하였다. 부락을 성공적으로 병합한 피라각은 이해에 국호를 남조(南詔)라 하였다. 당 조정에서는 축하의 의미로 피라각을 운남왕(雲南王)에 책봉하였고, 금포(錦袍) 등 예물을 하사했다. 피라각은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익년에 도읍을 외산(巍山)에서 [[태화성]](太和城)으로 천도했다. 748년, 피라각이 붕어하고, 그 뒤를 아들 각라봉(閣羅鳳)이 왕으로 즉위했다. [[분류:남조의 군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