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||<tablealign=center><tablewidth=400><:>[[파일:800px-Anne-Louis_Girodet-Trioson_006.jpg|width=100%]]|| ||<width=25%><:>'''풀네임'''||'''샤토브리앙 자작, 프랑수아 르네''' (François-René, vicomte de Chateaubriand) || ||<:> '''생몰년''' ||<:>[[1768년]] ~ [[1848년]]|| [목차] == 개요 == 생 말로에서 1768년 9월 4일에 태어나 파리에서 1848년 7월 4일에 사망한 샤토브리앙은 불문학 작가이자 전기 작가, 프랑스 정치인이다. 프랑스 낭만주의의 선구자이자 불문학에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. == 인생 == 브르타뉴 샤토브리앙 가문의 둘째로 태어나 시종들에 의해 키워지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살았다. 프랑스 혁명의 초기에 아메리카로 여행을 가고 "아탈라"와 "아메리카 여행기" 등을 출판한다. 1792년 [[프랑스 혁명]]의 귀족 척결을 피해 영국으로 피난을 간다. 1806년부터 1807년까지 그리스, 터키, 이집트, 스페인과 북아프리카를 여행해 그 기억을 "파리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"에서 회고한다. 복고왕정 시절, 프랑스로 돌아와 왕정주의자로써 활동했다. 긴 외국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차례 외교관으로 파견되었으며, 1822년부터 1824년까지는 [[샤를 10세]] 치세때는 외교부 장관의 직책을 맡았었다. 1815년부터 1830년까지, 즉 왕정복고의 처음부터 끝까지 상원의원이었으며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적이었으나 사회적으로는 개방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. 혁명에 대한 에세이, 기독교의 정수, 그의 저작물들은 대부분 그의 강경 왕정주의자로써의 면모를 보여준다. == 저술 활동 == ||혁명에 대한 에세이||1796년|| ||아탈라||1801년|| ||기독교의 정수|| 1802년|| ||르네||1802년|| ||파리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||1811년|| ||무덤 너머의 회상||1849년|| [[분류:1768년 출생]] [[분류:1848년 사망]] [[분류:전통주의자]] [[분류:정치 사상가]] [[분류:프랑스 혁명 전쟁]] [[분류:프랑스 소설가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