PUBLIUS LICINIUS CRASSUS (기원전 ? ~ 기원전 53년) [[고대 로마]]의 인물. 제1차 [[삼두정치]]를 이끌었던 [[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]]의 아들. [[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]] 휘하에서 [[갈리아 전쟁]]을 치렀던 군단장으로 카이사르에게 총애를 받은 인물이다.[* 시리아 원정을 떠나는 아버지를 따라가자 카이사르가 자기 휘하 기병 1000명을 떼어다 줄 정도였다.] 갈리아 전쟁에 아버지의 동맹자였던 카이사르의 휘하에서 종군, [[아리오비스투스]]가 이끄는 [[게르만족]]의 한 부류인 수에비족과 싸운 워세구스 전투에서 기병 대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, [[총독]] [[부관]]으로 임명되고 로마 군단을 이끌었다. 그리고 갈리아 전쟁에서 여러 전공을 세운 활약에 들은 카이사르는 푸블리우스를 총애하였다. [[갈리아 전기]]에서 그를 '젊은 크라수스'라고 부르며 중요한 임무를 맡기고 카이사르가 속주 통치를 위해 갈리아를 비울 때나 전투 중에 [[라비에누스|티투스 라비에누스]]와 함께 카이사르가 믿고 뒷일을 부탁하는 부하 장군 중 한 사람이었다. [[기원전 53년]] 아버지인 크라수스[* 크라수스는 [[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|폼페이우스]]와 함께 집정관의 임기가 종료되었으며 카이사르, 폼페이우스, 크라수스 이 세 사람이 중심이 된 삼두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다. 그러나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한 이후 거의 20년간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않는 크라수스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처럼 눈부신 전공을 세우고 싶다는 욕심에 원정을 생각하여 고른 상대가 시리아에 있는 [[파르티아]]였다. 원로원은 원정은 안된다고 설득하였으나,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찬성을 하여 승인하였다.]와 함께 [[시리아]] 원정에 나섰다가, [[수레나스]]가 이끄는 파르티아 군대와의 [[카르헤 전투]]에서 전사하였다. [[분류:고대 로마/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