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이탈리아군]] ||<table align=left><:> '''{{{+3 185ª Divisione paracadutisti}}}''' [br] '''{{{+4 "Folgore"}}}''' || ||<:> [[파일:attachment/folgore.jpg]]|| > ''' Fra le sabbie non più deserte''' > ''' son qui di presidio per l'eternità i ragazzi della Folgore''' > ''' fior fiore di un popolo e di un Esercito in armi.''' > ''' Caduti per un'idea, senza rimpianto, onorati nel ricordo dello stesso nemico,''' > ''' essi additano agli italiani, nella buona e nell'avversa fortuna,''' > ''' il cammino dell'onore e della gloria.''' > ''' Viandante, arrestati e riverisci.''' > ''' Dio degli Eserciti,''' > ''' accogli gli spiriti di questi ragazzi in quell'angolo di cielo''' > ''' che riserbi ai martiri ed agli Eroi.''' >------- > 엘 알라메인의 폴고레 추모석에 적혀있는 비문. ||<:> [[파일:4a316c62264c8c59d130667ed01a044e.jpg]]|| [목차] == 소개 == 밀덕, 역덕계에서 약군의 대명사로 조롱받는 근현대 이탈리아군사사지만 가끔 그 무능, 나약의 이미지를 피자 박스마냥, 스파게티면 삶다 퍼진듯이 까뒤집어버린 부대들이 몇몇 있었다. 검은 닭 깃털 장식으로 유명한 [[베르살리에리]], [[에르빈 롬멜]]과 부관이자 21기갑사단의 지휘관 한스 폰 루크 대령이 격찬했던 [[아리에테 기갑사단]], 바다에선 현대 [[UDT]] 수중침투전의 토대 자체를 닦았던 [[Decima Flottiglia MAS|데치마 플로틸리아 MAS]], 정식 이탈리아군이 아닌 이탈리아인들로 구성되었던 의용병들이었던 내전 당시 스페인 공화인민군 제11 국제여단 가리발디 대대 등이 있고, 이 항목에 소개된 폴고레 사단 또한 이런 군계일학 중 대표적인 부대였다 할 수 있다. 제2차 세계대전시 이탈리아군의 공수사단. 폴고레(Folgore)는 [[이탈리아어]]로 [[번개]]를 뜻한다. 오늘날 [[이탈리아군]]에서는 여단급으로 운영되고 있는 정예 공수사단이다. 공식 창설일은 [[1941년]] [[9월 1일]]이었으나 부대가 창설되기 전에도 작전에 투입됐다. 약군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군 중에서 분투하고 상당한 전과를 만든 부대. == 주요 연혁 == * 1941년 4월 그리스 해안 잔테, 체팔로니아 섬 전투강하 * [[영국]]령 [[키프로스]] 습격 * 1942년 7월 [[북아프리카]] 파병 === 북아프리카 전역 당시 편제 === * 185 공수[[포병]][[연대(군대)|연대]] 예하 [[블레르 47mm 대전차포]] 3개[[중대(군대)|중대]] 및 81mm [[박격포]] [[소대]] 2개 소대 * 186 공수연대 예하 5,6 공수[[대대]] * 187 공수연대 예하 2, 4, 9, 10 공수대대 * 독립 제 7 공수대대 * 강하전투공병대대 * 보충병력 * 귀아스타토리 전투공병대대 * 파비아사단의 보병대대, 포병대대 각 1개 대대 * 브레시아사단 예하 1개 포병중대 * 아리에테 기갑사단 예하 88mm 대전차 포병중대1개 * 제5베르사글리에리대대 예하 대전차 포병 중대 1개 * 독일 21기갑사단 예하 전차 1개소대 == [[엘 알라메인 전투]] == === 전투전의 상황 === * 1942년 9월 영국군의 브레스포드 공세시 제10 공수대대의 손실로 제9공수대대로 흡수 === 전투 상황 === * 1942년 10월 23일 엘알라메인 공세 시작 * 정규사단급의 방어구역 할당으로 방어역량 부족 * 1차 및 2차 방어선 구축으로 1차 방어선은 위장, 지나친 전차의 후미 공격 * 2차 방어선 화력 집중 * 이후 3일간 방어성공(상대 : 영국군 제7기갑사단, 44, 50보병사단, 자유프랑스 제1사단, 그리스 여단등) * 11월 2일 철수 명령 받음 * 11월 6일 푸카에서 항복. 이후 리비아까지 도보 퇴각. * 제 285 폴고레 공수대대로 재편성된 후 튀니지 전투에 참가 === 전과 및 피해 === * 연합군의 '''110여대의 전차 파괴''' 및 3,000여명의 사상자를 냄. * 정원 3,500명중 1,100여명 사상 === 평가 === >"남자 구실은 했다." >---- >"무기는 형편없지만 싸우는 법을 알았다." >---- >북아프리카에서 포로로 잡힌 [[독일 국방군]] 병사들의 평가. >나치의 병사들, 죙케 나이첼, 하랄트 벨처, 민음사. 391페이지. [[윈스턴 처칠]] 수상은 "우리는 사자와 같은 폴고레 사단의 생존자들을 위하여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." 라고 평가했다고 하지만 처칠이 이런 연설을 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는 게 정설. 구체적으로 말하면, 일부 해외자료가 처칠이 1942년 11월 2일 하원 연설에서 이런 언급을 했다고 주장하나, 공식 기록을 살펴보면 당일 [[하원]]은 소집된 바 없다. 다만 폴고레 사단 장병들의 분투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. 영국 제44 보병사단장인 허기스 장군은 " 나는 내 남은 생애에 두 번 다시 폴고레 사단과 같은 적을 만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."라고 말했다. 참고로 이탈리아군은 이미 2차대전 시절부터 폄하의 대상이었다. 아니 사실 군대뿐만 아니라 19세기경부터 이탈리아를 포함해서 [[라틴]]권, [[슬라브]]권같은 같은 백인이라도 좀 어딘가 후진적으로 보이는 나라들은 [[독일]], [[프랑스]], [[영국]], [[미국]]같은 더 나아보이는 백인들이 보기엔 다 까임의 대상이었다. 한국은 단지 이런 서구권의 드립을 수입했을 뿐이다. 자국내 비슷한 사례로는 [[이탈리아 해군]]에도 [[Decima Flottiglia MAS]]라는 특수부대가 대활약을 했다. [각주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