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||||||||||||<:><width=400><table bordercolor=black><bgcolor=black>'''[[고사성어|{{{#white 고사성어}}}]]'''|| ||<:><width=100>{{{+5 '''庖'''}}} ||||<:><width=100>{{{+5 '''丁'''}}} ||||<:><width=100>{{{+5 '''解'''}}} ||||<:><width=100>{{{+5 '''牛'''}}} || ||<:>부엌 포 ||||<:>고무래 정 ||||<:>풀 해 ||||<:>소 우 || 중국어 : páo dīng jiě niú 일본어 : ほうていかいぎゅう [목차] == 개요 == 庖丁解牛. '기술이나 솜씨가 매우 뛰어남'을 뜻하는 [[고사성어]]. 어느 분야에서 달인의 경지에 이르러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자랑할 때, 이를 일러 '포정해우'라는 말을 자주 쓴다. '포정(庖丁)'은 [[소]]를 잡아 뼈와 살을 발라내는 요리인을 말하고, '해우(解牛)'는 소를 잡아 뼈와 살을 발라내는 것을 말한다. 일종의 발골, 정형작업인 셈. 고사의 유래는《[[장자]](莊子)》의 〈양생주편(養生主篇)〉이다. == 일화 == ||포정이 문혜군(文惠君)을 위해 소를 잡은 일이 있었다. 그가 소에 손을 대고 [[어깨]]를 기울이고, 발로 짓누르고, 무릎을 구부려 칼을 움직이는 동작이 모두 음률에 맞았다. 문혜군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"어찌하면 [[기술]]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가 있느냐?"라고 물었다. 포정은 칼을 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. "제가 반기는 것은 '도(道)'입니다. 손끝의 재주 따위보다야 우월합니다.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만 보여 손을 댈 수 없었으나, 3년이 지나자 어느새 소의 온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습니다. 요즘 저는 '''정신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'''. 눈의 작용이 멎으니 정신의 '''자연스런 작용'''만 남습니다. 그러면 천리(天理)를 따라 쇠가죽과 [[고기]], [[살]]과 [[뼈]]사이의 커다란 틈새와 빈 곳에 칼을 놀리고 움직여 소의 몸이 생긴 그대로 따라갑니다. 그 기술의 미묘함은 아직 한 번도 칼질을 실수하여 살이나 뼈를 다친 적이 없습니다. 솜씨 좋은 소잡이가 1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. 평범한 보통 소잡이는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, 이는 무리하게 뼈를 가르기 때문입니다. 그렇지만 제 칼은 19년이나 되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. 저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. 두께 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, 널찍하여 칼날을 움직이는 데도 여유가 있습니다. 그러니까 19년이 되었어도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. 하지만 근육과 뼈가 엉긴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그 일의 어려움을 알고 두려워하여 경계하며 천천히 손을 움직여서 칼의 움직임을 아주 미묘하게 합니다. 살이 뼈에서 털썩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. 칼을 든 채 일어나서 둘레를 살펴보며 머뭇거리다가 흐뭇해져 칼을 씻어 챙겨 넣습니다." 문혜군은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(養生)의 도를 터득했다며 감탄했다고 한다.|| == 의의 == 결국 이 이야기에서 [[장자]]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'최고의 [[백정]]은 눈으로 보지않고 마음으로 본다'. 즉, '망'을 통하여 자신의 관점과 사물의 관점을 하나로 융합한다. 이를 통해 인위와 조작이 섞이지 않은 '''자연스러움'''이야말로 최상의 도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. == 여담 ==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서 소를 잡을 때 뼈와 살이 다치지 않도록 긍경을 잘 찾아 살을 잘 발라냈다는 데서 연유해, 사물의 급소를 잘 찌르고 요점을 잘 찾아내는 것을 '긍경에 닿다'라고 표현한다. [[협객풍운전]]에서 왕용과의 이벤트에서 포정해우의 일화가 언급되며 왕용의 포정해우도법을 익히게 된다. 일본어로 [[식칼]]을 의미하는 단어인 호쵸(包丁, ほうちょう)는 포정의 이름에서 연유한 표현이다. [[분류:고사성어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