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목차] == [[삼국시대(중국)|삼국시대]] 위나라의 인물 == 鮑邵 생몰년도 미상 [[삼국시대(중국)|삼국시대]] 위나라의 관료. 아버지인 [[포신#s-2|포신]]은 [[조조]]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서 황하 남쪽을 차지해 [[동탁]]에게 일이 생겨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라고 권하거나 동탁을 공격할 때 조조를 따라 추격하는 것에 참가했으며, 또한 [[황건적]]과의 싸움에서 [[유대(삼국지)|유대]]가 전사하자 조조에게 주목의 자리를 내준 후에는 그 자신도 황건적과 싸우다가 전사하고 조조가 황건적을 격파한 것으로 연주목에 오르면서 조조의 근거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. 이 덕분에 212년에 조조가 포신의 공적을 기록해 동생인 [[포훈]]과 이에 대한 보답을 받으면서 포소는 이 때 신도정후로 임명되었다. 포소는 아버지의 풍격이 있었고 조조를 섬기면서 기도위, 사지절에 임명되었으며, 그가 죽자 아들인 포융이 작위를 계승했다. === 창작물에서 === [[삼국지: 한말패업]]에서 등장해 군사 39, 무용 33, 지모 42, 정무 49, 인사 50, 외교 53의 능력치로 170년 생으로 나온다. == [[삼국지연의]]의 등장인물 == 鮑素 [[삼국지연의]]의 가공인물. 촉나라의 장수로 [[강유]]가 적도에서 위군과 싸우려고 할 때 장수들이 조수에서 승리했으니 위군이 위엄에 굴복했는데 무슨 까닭으로 나가냐고 묻자 강유는 장수들에게 위나라가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 급히 얻을 수 없다는 것만 안다면서 위군을 공격해서 이길 수 있는 5가지 이유를 대면서 싸우기를 고집해 기산으로 나아갔다. 그런데 위군이 기산에 영채 아홉 개를 세워놓자 강유는 위나라에서 준비를 했기 때문에 자신이 올 것을 알 것이라 여겨 거짓으로 강유의 깃발을 세우고 골짜기 어귀를 차지해 영채를 세우도록 한 다음에 순찰하면서 깃발을 바꾸도록 하고 강유는 대군을 이끌고 동정으로 나아가 남안을 치겠다고 하자 포소가 남아 골짜기 어귀에 주둔했다. 그러나 등애가 이를 간파하면서 [[진태]]의 공격을 받아 포소는 전사했으며, 이어서 동정의 길을 막아 강유의 뒤를 끊었다. 등애가 남안을 구원하기 위해 무성산에 손에 넣은 후에 강유는 등애의 매복으로 단곡에서 격파되면서 패했다. [[분류:한나라의 관료]] [[분류:삼국지/가공인물]][[분류:위나라의 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