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480px-EdsellogoE.svg.png]] [목차] '''Edsel''' == 개요 == 1957년부터 1959년까지 [[포드(자동차)|포드 자동차 회사]]에서 포드와 머큐리의 중간급 브랜드로 운영했던 [[브랜드]]이다. 이름의 유래는 창립자 [[헨리 포드]]의 아들 에드셀 포드. 하지만 이름이 무색하게 '''자동차계의 [[타이타닉]]'''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실패를 거두고 말았다. == 배경 == [[제2차 세계 대전]] 이후 미국 소비자들의 경제력이 성장하는 모습을 본 포드는, 기존의 포드와 머큐리 브랜드 사이에 위치시킬 고급화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었다. [[홍보]] 방법에 있어서도 신차의 모습을 공개하지 않고 부분적인 모습을 서서히 공개하다가 전체적인 모습을 나중에 공개함으로서 고객들의 기대와 반응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서 큰 공을 들였을 정도였다. 이름의 경우는 소비자들로부터 무려 6천개 가량의 후보명을 받아들었으나[* 검증을 거치고 거쳐 코르세어(Corsair), 사이테이션(Citation), 페이서(Pacer), 레인저(Ranger) 4개의 이름이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었다고 한다.], 당시 포드 회장은 '''[[사망 플래그|그 많은 후보명 중에서 뽑기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"에드셀"을 홧김에 제시했다.]]'''[* 이당시 포드 회장은 창업자 헨리 포드의 손자이자 에드셀의 장남이었던 헨리 포드 2세. 헨리 포드는 ~~여러 사생아를 제외하면~~ 아들이라고는 에드셀 포드밖에 없었는데, 이 아들이 2차대전 기간 중 과로와 브루셀라증으로 인한 위암으로 1943년에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자, 그의 맏손자이자 에셀 포드의 장남인 헨리 포드 2세 한테 경영권이 넘어가게 되었다. 헨리 포드는 아들이 죽은지 4년 뒤인 1947년에 세상을 떠났다.] 당시 홍보회장이 [[프레첼]](Pretzel)이나 [[족제비]](Weasel)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신차 이름으로는 부적합하다고 반대했음에도 회사에서는 에드셀이라는 이름을 끝까지 밀어붙였다. 디자인의 경우, 포드의 디자인 팀에서는 당대 미국차들과 차별화될수 있는 디자인을 구상하고 있었다. 이러한 디자인 연구의 결과물들 중 하나로 나온 것이 기존의 일자형 크롬 범퍼의 중앙을 뚫고 지나가는 세로 형상의 "임팩트 링" 그릴로, 에드셀에게 강해 보이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였다. 그 결과는 나중에 밝히겠지만, 디자이너들의 생각과는 달리 비평가들과 소비자들의 반발이 심했다. 사실 개발과정에서는 이름 선정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들이 고위직들의 즉흥적인 생각들로 진행되었으며, 이전에는 '''형식적으로나마 진행하던 외부 컨설팅조차 무시한 채 진행'''되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실패를 미리 예고하고 있었다. 심지어 에드셀이 출시된 때도 1957년 9월로, 다음 년식 차를 11월에 출시하는 관행을 무시한 결과는 처참했다. 그 시기는 다른 업체들이 57년식 차들을 [[재고]]처리 차원으로 싸게 팔아치우던 시기라 고가차였던 에드셀에게는 힘든 시기가 예상되었다. == 출시 및 판매 == ||<width=50%>[[파일:external/www.fahrzeugbilder.de/ein-edsel-pacer-1958-auf-53902.jpg|width=100%]]||[[파일:external/acarsstory.files.wordpress.com/edsel-pacer-2dr-ht-03.jpg|width=100%]]|| |||| 1958년식 에드셀 페이서 || 그렇게 해서 1957년 9월 3일. 낙관으로 일관된 주먹구구식 계획의 결과물로서 에드셀이 소비자들에게 그 모습을 공개했다. 에드셀은 차체 라인업 4가지[* 포드차 기반의 2종과 머큐리 기반의 2종으로 구성되어 "큰 차"와 "더 큰차"로 구분되는 것과 다름없었다. 세단, 왜건, 쿠페, 컨버터블과 같은 형식의 차체 구분은 이 4가지 내에 들어 있었다.]를 갖춘 것은 물론, 온갖 상태에 대비한 경고등을 갖춘 속도계와 핸들 중앙에 장착된 버튼식 변속기, [[스튜드베이커]] 이후로 최초로 적용되는 자동조절식 브레이크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조작 설계 등의 "혁신"들이 있었으며, 당시에는 돈 주고 사야 달려나오던 안전벨트가 기본으로 달려나왔으며 열쇠 없이 열리지 않는 아동 보호가 가능한 뒷문 도어 락도 설치되었다. ||<width=50%>[[파일:external/www.mcecars.com/Edsel%20005.jpg|width=100%]]||[[파일:external/cdn.barrett-jackson.com/132934_Rear_3-4_Web.jpg|width=100%]]|| |||| 1959년식 에드셀 레인저. 초대 에드셀 대비 디자인이 차분해졌다. ||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보자면 나름 성공할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이겠지만, 실상은 매우 처참했다. 우선 디자인[* 당장 에드셀에 대한 유명한 코멘트 하나가 "[[레몬]] 빨아먹는 [[올즈모빌]]"이었고, 심지어 소비자들 중에서는 가시 달린 [[음문]]에 비유한 사람도 있었다.]부터가 소비자들과 비평가들이 하나같이 비난하는 부분이였고, 이름 역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. 심지어는 생산 공정도 [[포드(자동차)|포드]]와 [[머큐리(자동차)|머큐리]] 공정 7곳을 왔다갔다하는 상황이라 품질이 균일하지 못해서 품질에 대한 비아낭까지 생겨났다. 더군다나 이때는 미국에서 불황이 시작되는 시기라, 에드셀같이 비싸고 호화스러운 차는 제대로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될 수 없었다. ||<width=50%>[[파일:external/www.curbsideclassic.com/1960Edsel1jg.jpg|width=100%]]||[[파일:external/www.curbsideclassic.com/1960Edsel2jg.jpg|width=100%]]|| |||| 1960년식 에드셀 레인저. 에드셀 고유의 특징들이 완전히 사라졌다. || 이로 인해 에드셀은 “못생긴데다 비싸고 기계장치만 쓸데없이 많다“는 혹평 속에서 예상 생산대수 20만대 중 6만대 정도를 판매하는 엄청난 흥행실패로 첫 해를 마감했으며 1959년식과 1960년식은 더 처참한 실적을 거두고 1959년에 에드셀 브랜드와 같이 사라졌다. 1958년식 에드셀을 홍보하고자 [[빙 크로스비]], [[프랭크 시나트라]], [[루이 암스트롱]] 등의 유명인사들을 출연시킨 [[CBS(미국 방송)|CBS]]와의 합작 방송인 “The Edsel Show“를 방영하는 등의 엄청난 홍보를 하고, 심지어 1959년식에서는 불필요한 장비들을 떨쳐 버리고 가격을 [[쉐보레]]와 [[플리머스]] 수준으로 낮추었으며 1960년식에서는 에드셀의 오랜(?) 아이덴티티이자 혹평의 이유 중 하나였던 임팩트 링 그릴을 없애버리고도 실패한 것을 보면, 브랜드 자체의 이미지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을지를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. 이로 인해 포드 측에서는 엄청난 손해를 보았고 적잖은 대리점들이 문을 닫았지만, 포드 측에서는 좋은 경험이라고 평가했다고 하며, 1960년대에 [[포드 선더버드]]와 [[포드 팰컨|팰컨]], [[포드 머스탱|머스탱]] 등의 성공으로 이러한 손해를 매꿀 수 있었다. === 생산된 차종 === * 에드셀 레인저: 포드 기반의 최저가 라인업으로, 2도어 쿠페와 하드탑 쿠페, 4도어 세단과 하드탑 세단으로 구성되었다. * [[에드셀 페이서]]: 포드 기반. 1958년 한해 동안만 생산되었으며, 4도어 세단, 하드탑 세단, 하드탑 쿠페, 컨버터블로 구성되었다. * 에드셀 코세어: 머큐리 기반으로, 1958~1959년 사이에 2도어와 4도어 하드탑만 제공되었다. * 에드셀 사이테이션: 머큐리 기반이며, 1958년 한 해 동안 컨버터블과 2도어 하드탑, 4도어 하드탑이 제공되었다. 에드셀 중 가장 고가 사양이다. * [[에드셀 라운드업]]: 포드 기반의 2도어 왜건이며, 1958년 한 해 동안 기본형으로 제공되었다. * [[에드셀 빌리저]]: 4도어 왜건 중 기본 사양. 포드 기반 플랫폼에, 1960년까지 생산되었다. * [[에드셀 버뮤다]]: 1958년 한 해 동안만 생산된 고급형 왜건으로, 포드 기반의 4도어 왜건이다. == 여담 == ||<width=48%>[[파일:external/www.igcd.net/956.jpg|width=100%]]||<width=52%>[[파일:external/s-media-cache-ak0.pinimg.com/a1aaf99c3a3d0ea95df831a5c9a917c8.jpg|width=100%]]|| * 고전게임인 [[공포의 저택|매니악 맨션]]을 플레이하는 도중, 차고에서 빨간색 58년식 에드셀을 발견할 수 있다. 잘 알려진 명칭은 "이상한 에드셀(Weird Edsel)"로, 발견되었을 때부터 개조되어 있는 상태라서 우주선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. * [[카트라이더]]의 카트 바디 중, 로디 클래식이 1958년식 에드셀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. * [[총알탄 사나이]] 2편에서 주인공인 프랭크 드레빈 경감(레슬리 닐슨)이 1편때 사귀게 된 제인(프리실라 프레슬리)가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는 것을 알게 된 후 실의에 빠져 앉아 있는 바의 벽에 에드셀의 사진이 다른 [[타이타닉호 침몰 사고|실]][[힌덴부르크호 폭발 사고|패]]의 [[마이클 듀카키스|상]][[네빌 체임벌린|징]]들과 함께 걸려 있다.(...) == 둘러보기 == [include(틀:에드셀의 차량)] [[분류:포드 모터 컴퍼니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