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생년 미상]][[분류:몰년 미상]][[분류:신라의 왕비]] ||||<:><tablebordercolor=#4A2D5B><#4A2D5B> '''{{{#white 호?[* 당대 기록에 남은 호칭은 아니다.]}}}''' ||||<(><colbgcolor=white,#2d2f34> 폐비 김씨 || ||||<:><#4A2D5B> '''{{{#white 본관}}}''' ||||<(> 경주 김씨(慶州 金氏) || ||||<:><#4A2D5B> '''{{{#white 성씨}}}''' ||||<(> 김(金) || ||||<:><#4A2D5B> '''{{{#white 이름}}}''' ||||<(> 불명 || ||||<:><#4A2D5B> '''{{{#white 아버지}}}''' ||||<(> [[김흠돌]] || ||||<:><#4A2D5B> '''{{{#white 배우자}}}''' ||||<(> [[신문왕]] || ||||<:><#4A2D5B> '''{{{#white 생몰연도}}}''' ||||<(> ? ~ ? || 신라 중대의 인물. [[신문왕]]의 첫 번째 왕비이며 [[김흠돌의 난]]을 일으킨 [[김흠돌]]의 딸. [[신문왕]]이 즉위하기 전 태자 시절 맞이한 [[조강지처]]로, 그녀의 아버지인 [[김흠돌]]이 삼국통일전쟁의 공신이었으므로 출신 성분 또한 좋은 편이다. 그러나 오래도록 자식을 낳지 못했고, 아버지가 반역죄로 처형당한 후 그녀 또한 아버지의 죄에 연좌되어 폐출된다. 이후 [[신문왕]]은 [[김흠운]]의 딸 [[신목왕후]]와 재혼한다. [[신문왕]]의 두 아들인 [[효소왕]]과 [[성덕왕]]은 모두 [[신목왕후]]의 소생. '''신라 역사상 최초로 폐위된 왕비'''인데, 그녀 이후로는 폐위된 왕비가 줄줄이 나온다(...). 오죽하면 왕비의 폐위와 새로운 왕비의 입궁이 중대 왕실의 특징으로 언급되기까지 할 정도.[* 신라 중대는 그 임팩트에 비해서 의외로 짧은 시기인데 그 짧은 기간동안 왕비의 폐출과 왕들의 재혼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은 확실히 특이한 점이기 때문에 중대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.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