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타악기)] [목차] == 개요 == ||<tablealign=center>[youtube(Ogv7TONohxY)] || || 한국 전통편종의 모습 || ||<tablealign=center>[youtube(Th6NmOJQcEg,width=640,height=360)]|| || 중국 전통편종의 모습 || ||[[http://100.naver.com/100.nhn?type=image&media_id=36038&docid=181490&dir_id=0903060101|네이버 백과사전]]|| 한국과 [[중국의 전통악기]]로 유래가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. 기원전 4세기에 매장된 증후 을의 묘에서 발굴된 증후을묘편종은 현재 발굴된 편종 유물 중 가장 완벽하게 원형이 보존되었는데, 최소 춘추시대에는 편종의 원형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. [[국악]]에서도 사용되므로 [[국악기]]에 포함된다.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려 때 [[북송]]에서 수입된 아악기로 黃=C인 당악 음정을 따른다. [[편경]]과 쌍을 이루는 악기이다. [[종(악기)|종]] 16개를 두 단으로 된 나무 틀에 위아래 여덟 개씩 매단 악기이다. 나무틀의 발 부분은 [[사자]]모양의 받침대에 각각 꽂아 놓는다. 틀 위쪽 양편에는 [[용]]의 머리 모양으로 조각하고, 꼭대기에는 [[공작(조류)|공작]] 다섯 마리와 물들인 실로 만든 술로 장식한다. 연주할 때는 뿔로 만든 망치 각퇴(角槌)로 종 아랫단의 둥글게 표시된 부분을 두드려서 연주한다. [[악학궤범]]에 따르면 아랫단은 오른손, 윗단은 왼손으로 치며 속악(향악)에는 양손으로 연주했다고 하는데 오늘날은 그냥 오른손으로만 연주한다. 편종에는 두 가지 제조 방식이 있다. 하나는 종의 크기에 따라, 다른 방법은 종의 두께에 따라 음높이가 달라지는 방식이다. 한국에서는 [[세종대왕|세종]] 11년(1429)에 두 번째 방법, 즉 종의 크기는 같고 종의 두께로 음정을 결정하는 법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. 종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음의 높이가 높아진다. == 역사 == [[대한민국]]에 처음 들어온 것은 [[고려]] [[예종(고려)|예종]]대 [[북송]] [[휘종]]이 [[편경]]과 함께 보내준 때 일이고, [[공민왕]] 때에도 전란으로 소실된 편경과 [[편종]]을 [[명나라]]에서 다시 구입했다는 이야기가 [[고려사]] 등에 나온다. 이후 [[태종(조선)|태종]]대까지도 [[중국]]에서 편종과 [[편경]]을 수입했는데, 중국에서 보내주는 편종은 음정이 정말 [[개판]]이었다고 한다(…)~~역시 유서 깊은 [[메이드 인 차이나]]~~ 결국 [[세종대왕|세종]] 11년(1429)부터는 [[박연]]의 건의로 주종소를 두어 국내에서 직접 만들었다. 음에 맞춰 종을 두드리기만 하면 되는 쉬운 연주법이지만, 생각보다 두드리는 강도나 방법에 따라 음색이나 음량이 쉽게 달라져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악기이다. 종 아래 정면에 치는 부분을 둥글게 표시해 놓은 것도 악사들이 아무 데나 함부로 두들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. (세종실록 권46) [[국립국악원]]에서는 1920년대까지 편종 전공이 있었고, 실제로 편종을 전공으로 하여 일생을 바친 악사들도 많았다고 한다. 현재는 [[종묘제례악]]과 [[문묘제례악]], [[보허자]], [[낙양춘]] 등에 편성한다. [[취타]]를 대편제로 연주할 때도 간혹 편성할 때가 있다. [[분류:국악기]][[분류:타악기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