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목차] [include(틀:역대 그래미 평생 공로상 수상자)] ---- [include(틀:역대 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자)] ---- == 개요 == 페리 코모(Perry Como. 1912.05.18 ~ 2001.05.12, 향년 88세)는 미국의 가수이다. [[이탈리아계 미국인]]으로, 194~50년대 당시의 많은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수 중에서도 제일 많은 인기를,[* 같은 이탈리아계인 [[프랭크 시나트라]]와 맞먹는 수준이었다.] 아니 미국 음악계 자체에서 제일 인기있는 가수 중 하나였다. == 상세 == 1950년대 초반 당시 미국 인기 가수의 순위를 보자면 [[빙 크로스비]] > [[냇 킹 콜]] > 페리 코모 > [[프랭크 시나트라]]로 프랭크가 잠시 밀려 있고 빙은 절대적 상징으로 1위를 거머쥐었으며 냇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, [[미국 흑인]]에게는 백인과 동등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고 인종차별이 [[연방법]]으로도 용인되던 40년대 말 갑자기 신드롬적인 인기로, 프랭크 시나트라 류의 틴 아이돌적인 인기가 아니라 음악 그 자체로 백인 기성세대를 매료해 버린 아주 특출난 케이스고[* 냇 킹 콜 전엔 [[루이 암스트롱]]이 있었다. 루이 역시 백인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 많은, 즉 미국에서 제일 인기 많은 가수 및 엔터테이너 중 하나였으니까. 대신 당대 [[미국 흑인]]들은 루이를 위선자라고 비판하며 싫어했다. 자신들은 매일같이 차별받고 린치당하는데 루이는 최고급 스타의 위치에 올랐으니. 그러나 루이가 미국 흑인에 대한 인식을 전보다 개선한 것은 확실하다. 냇도 그랬었고. 이 두 흑인 스타가 없었으면 백인들이 흑인들을 1910년대 • 20년대처럼 막 약탈하고 죽이고 린치하지 않았겠는가? 실제로 이 두 분이 흑인 인권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.] 페리는 그 다음 순위였다. 무슨 말이냐면 빙은 [[비틀즈]]나 [[엘비스 프레슬리|엘비스]] 같은 상징적 1위[* 50년대 들어 히트곡이 크게 줄었으니. 빙이 인기가 떨어졌다기보다도, 빙이 1950년대에는 활동을 전 시대에 해 널널하게 했다. 이미 히트곡이 백 개도 넘고 돈도 많고, 나이도 50인데 예전처럼 열심히 할 이유가 있지도 않았다.]였고 냇 킹 콜은 1950년 Mona Lisa로 빌보드 연말 차트 2위 [* 1950년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크게 히트한 곡.], 1951년 Too Young으로 빌보드 연말 차트 1위 [* 1951년 최고의 히트곡.] 으로 명실공히 상업적으로 제일 승승장구하던 가수였다. 페리 코모는 그 다음으로, 빙과 냇의 아성은 넘지 못했으나 싱글 차트 1위, 히트곡들을 계속 내놓은 가수였다. 실제로 페리는 40년대 중후반에도 프랭크 시나트라보다 더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가수이다.[* 페리는 40년대 중후반부터 빌보드 차트 1위 곡을 많이 배출했다.] 페리 코모의 또 다른 점은, 빙이나 냇, 프랭크 류의 크루닝 창법 기반 트레디셔널 팝 가수가 아니라, Novelty Song[* 진지한 노래가 아니고, 고전 미국 쇼의 영향을 받아 코믹하고 즐겁고 유쾌한 가사가 특징인 장르이다.]을 주로 불러 장르에 구애받지 않았다. 예를 들어 1955년 발표된 Ko Ko Mo (I Love You So)는 [[락앤롤]]/[[리듬 앤 블루스]] 곡으로 페리는 [[Bill Haley|빌 헤일리]]류의 락앤롤이 히트를 치자 마자 이러한 곡을 내놓아 빌보드 차트 5위에 오르며 성공했고 1956년 발표된 Hot Diggity [* [[Fall Guys: Ultimate Knockout]] 런칭 예고편에 쓰였다.]는 그냥 즐겁고 유쾌한 팝 트랙이다. 참고로 이때는 엘비스가 나온 해였고 엘비스가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나 페리의 인기는 떨어지지 않았고 [* 페리는 전 연령층에 팬들이 있었다. 빙, 프랭크와는 다른 케이스다. 물론 냇 역시 전 연령대에 팬이 있었기에 죽기 전까지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.] 페리는 1957년 Round and Round로, 1958년 Catch A Falling Star로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다. 다만 이때는 [[빌보드 핫 100]]이 아니라 전체 차트를 판매량 차트, 주크박스 차트, 레이디오 디제이 차트로 나눠 했기에 좀 달랐다만 1955년에 개설된 핫 100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탑 100도 있었다. Round and Round는 세 차트 모두 1위를 기록하고 탑 100에서도 1위했지만 Catch A Falling Star는 세 차트 중 두 차트에서 1위 했으나 아쉽게도 탑 100에서는 2위를 했다. 핫 100은 1958년 여름에 개설된다. 1957 ~ 1958년은 락앤롤이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시대였지만 페리 코모는 아직 탑에 있었다. 페리 코모가 원래부터 예술적이라기 보다는 상업적이고 친근한 노래[* 위에서 말했던 Novelty Song.]를 부르고 또 성격 또한 좋았기 때문에 계속 선방한 것이다. 이는 냇과도 일맥상통한다. 그러나 페리도 1959년부터 한동안 침체기였다. 페리 코모 쇼라는 인기 쇼를 1956년부터 진행해서 인기를 끌고 있었으나 가수로선 한동안 침체기였다. 1962년 발매한 싱글이 핫 100에서 23위를 기록하긴 하지만 페리의 가수 커리어를 정점으로 올리는 수준은 아니었던데다 1964년엔 [[브리티시 인베이전]]으로 음악계가 또한번 크게 바뀌며 음악계에서 페리가 설 자리를 잃는다. 그러나 히피 문화가 빠르게 죽은 69년 말 이후 이지 리스닝 열풍으로 페리는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. [[분류:미국 남가수]][[분류:이탈리아계 미국인]][[분류:1912년 출생]][[분류:2001년 사망]][[분류:1940년대 음악]][[분류:1950년대 음악]][[분류:트레디셔널 팝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