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조선의 왕자군]] [[분류:1535년 사망]] ---- ||<-3><tablealign=right><table width=400><tablebordercolor=#94153E><bgcolor=#94153E> {{{#gold '''조선 태종의 현손'''[br]{{{+1 '''파릉군[br] 巴陵君'''}}}}}} || ||<-2><width=30%><bgcolor=#94153E> '''[[군호|{{{#gold 군호}}}]]''' ||<(> 파릉군(巴陵君)[* 군호는 지금의 [[서울특별시]] [[양천구]], [[강서구(서울특별시)|강서구]] 일대의 별호인 '파릉'에서 유래했다.]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[[본관|{{{#gold 본관}}}]]''' ||<(> [[전주 이씨|전주]](全州)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[[휘|{{{#gold 휘}}}]]''' ||<(> 경(璥)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[[자(이름)|{{{#gold 자}}}]]''' ||<(> 子振(자진)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[[아호|{{{#gold 호}}}]]''' ||<(> 德巖(덕암)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생부}}}''' ||<(> 금릉군[* 경녕군의 7남인 복성군의 3남.]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생모}}}''' ||<(> 신부인 [[황(성씨)|창원 황씨]](昌原 黃氏) || ||||<: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부인}}}''' ||<(> 현부인 과천 오씨(果川 吳氏) || ||<|2><:><bgcolor=#94153E> '''{{{#gold 생몰[br]기간}}}''' ||<:><bgcolor=#94153E> '''[[음력|{{{#gold 음력}}}]]''' ||[[미상]] ~ [[갑오|갑오년]] [[12월 7일]] || ||<:><bgcolor=#94153E> '''[[태양력|{{{#gold 양력}}}]]''' ||[[미상]] ~ [[1535년]] [[1월 10일]]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[[조선]]의 왕족. [[태종(조선)|태종]]의 서장자 [[경녕군]]의 증손으로 [[성종(조선)|성종]]의 [[8촌]] 동생이다. 《[[조선왕조실록]]》에선 자세히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 [[성리학]]적 소양이 있던 모양이다. [[기묘사화]]가 일어나고 [[조광조]]가 유배가서 [[사사]]당한후 과감히 [[중종(조선)|중종]]에게 상소를 올려 조광조 등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했다가 그만 미운털이 박혔는지 해남으로 유배당하고 만다. 그랬다가 양력 1535년 1월 10일에[* 음력 갑오년 12월 7일.] [[해남]]에서 생을 마쳤다.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ka_12912007_002|#]] == 대중매체에서 == * [[최동준]] - 2001년 ~ 2002년 [[SBS]] 《[[여인천하]]》 ||<table width=400> [[파일:external/img.sbs.co.kr/2007_02_06_16_21_20_734.jpg|width=100%]] || || [[여인천하]]에서의 파릉군(坡陵君) || 《[[여인천하]]》에서는 이런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서 [[정난정]]의 친아버지로 나온다. 배우는 [[최동준]]. 그러나 정난정의 생모가 산속에서 그녀를 낳을 때 파릉군은 역적으로 몰려 유배를 갔고 생모가 아이를 낳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 뒤에 다른 여자가 정난정을 데리고 가 자기 딸로 키웠기 때문에 둘 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. 파릉군은 유배가 풀린 뒤 나름대로 [[첩]]과 그녀가 낳았을 자식의 행방을 찾아 다녔으나 끝내 찾질 못했다.[br][br]강직한 성격으로 조광조의 개혁을 지지했다가 [[기묘사화]] 당시 조광조의 유배와 사사를 반대하다가 조광조와 한패라는 이유로 또 유배되었다. 일시 유배가 풀린 후, [[중종(조선)|중종]]에게 ~~[[데스노트]]~~ [[살생부]]를 만들라는 명을 받는다. 중종의 정치개혁 의지가 있었다...라는 것이었지만 정난정의 계략으로 결국 파릉군은 살생부 제작을 포기하고 다시 유배되었다가 [[명종(조선)|명종]]이 등극한 이후에 회초리로 명종의 종아리를 때린 [[문정왕후]]를 면전에서 대놓고 질타하다 문정왕후의 미움을 샀고, 또 다시 유배 되었다가 정난정의 계략으로 결국 사약을 받고 사사되는 걸로 나온다.[br][br]하지만 정난정의 출생을 지켜봤으며 그녀의 보호자 중 한 명인 당추 스님이 정난정에게 파릉군이 친부임을 알려주자 경악하는 정난정은... 엄밀하게 말하면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어진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.[br][br]작중에서는 올곧은 선비로 나오지만, 무려 네 번이나 유배되고, 결국 친딸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만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[[안습]]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