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배우 트위스트 김.jpg]] [[1936년]] [[4월 6일]] ~ [[2010년]] [[11월 30일]] [[한국]]의 [[배우]]로, [[본명]]은 김한섭. [[고향]]은 [[부산광역시]]로, [[1962년]]에 [[영화]] [[동경서 온 사나이]]로 데뷔하였다. 한 때 주연배우를 희망하여 연출자에게 부탁을 했으나, 외모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[* 신작 영화의 감독을 맡은 이에게 주연으로 발탁될 수 있을지 의사를 타진해봤지만, "니 상판을 봐라"는 타박만 들었다고.]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. 다만, 이 과정에서 주연배우들이 감당해야 하는 대본과 연기 과정을 절감, 과감히 생각을 바꾸어 정력적인 배우 활동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. [[1980년대]]부터는 [[전두환]] 군부독재의 3S정책에 항거하여 어용영화는 사절이라며 밤무대에 출연하기 시작한다. 그러나 동일 세대의 배우들은 이걸 도피성 행위로 간주했고, 이 때문에 배우로서 자격이 없다는 명분하에 영화인협회에서 사실상의 [[제명]]에 준하는 취급을 받게 된다. 그나마 86년에 출연한 깜보[* [[박중훈]], [[최진실]] 주연의 액션 영화.]와 90년에 개봉된 [[남부군(영화)|남부군]]이 [[인지도]]가 있지만, 지난날처럼 영화계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았으며, 간간히 주류 영화인들의 작품에 출연하는 수준이었다. 그렇지만 본인이 연출에 관여하는 뮤지컬, 기타 방송출연 등으로 활동하며 배우 생활을 멈추지 않았다. 특히 뮤지컬에서는 칠순이 다 된 몸으로도 녹록치 않은 춤솜씨를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. 하지만, 본업인 영화인으로서 활동의 제약은 끝내 벗어나지 못했고, 게다가 불필요한 구설수에까지 올라 인망에 손상을 입었으며, 설상가상으로 [[2003년]]부터 [[본인]] 이름을 도용한 인터넷 음란사이트들 때문에 오해를 받게 된다. [[2005년]]부터 음란사이트 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법정 투쟁을 했으나, 당시 관련 법률이 없어 업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. 결국 그는 이듬해 [[호텔]] 행사를 마치고 '''"사회생활 사형선고"'''로 악명높은 [[뇌졸중]][* 한방에서 흔히 [[중풍]]으로 분류하는 중병이다. 대개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는데, 설령 완치 판정을 받아도 반신불수 판정을 받아서 거동이 불편해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어렵게 된다. 때문에 젊은 시절 아무리 왕성한 활동을 했던 사람이라도, 이 병으로 쓰러지면 누가 문병도 잘 오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있는 질병이기도 하다. 이 병으로 쓰러진 사람을 '''같은 사람이 2번 문병오면 지난 날 덕(德)을 쌓은 사람'''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.]으로 쓰러져 [[식물인간]] 상태로 투병하다 2010년 작고했다. 사후 장례식에 영화인 협회 누구도 오지 않았으며, 결국 마지막까지 외면당했다. [[http://eowndansghk.tistory.com/100|#1]], [[http://news.chosun.com/site/data/html_dir/2010/11/30/2010113001562.html|#2]]. [[분류:한국 남배우/ㅌ]][[분류:1936년 출생]][[분류:2010년 사망]][[분류:부산광역시 출신 인물]][[분류:1962년 데뷔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