---- ||<-5><tablebordercolor=#0047a0><bgcolor=#0047a0><table align=center><tablewidth=100%><width=100%> [[대한민국|[[파일:대한민국 국장.svg|width=26]]]] '''[[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|{{{#ffffff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}}}]]''' || ||<width=30%> 200호 ||<|2> ← ||<width=30%> '''201호''' ||<|2> → ||<width=30%> 202호 || ||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 || '''통영 해저터널''' || [[진주역 차량정비고]] || ---- [[파일:통영 해저터널_2015-07-15-14h36.jpg]] [목차] == 개요 == [[일제강점기]] 시절 건설된 [[통영시|통영]]의 [[해저터널]]로 길이 461m, 높이 3.5m, 넓이 5m, 깊이 10m[* 평균 해수면 기준]로 통영반도와 미륵도를 연결하고 있다. 1927년 5월에 착공하여 1932년경에 준공하였으며, 1차 보수를 1996년 경에 하였다. 2005년 9월 14일에 [[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|등록문화재]] 제201호로 지정되었다. == 상세 == 완공 이후 근 백 년가량이 지난지라 워낙 오래되어 바닷물이 스며드는 등 노후화되었으며, 운하교인 충무교(판데다리)가 완공된 후 1967년 경부터 자전거를 제외한 차량의 통행은 금지되어 있다.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. 이 해저터널 건설에는 꽤나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. 보통이라면 다리를 지었겠지만 그곳이 하필 착량묘(鑿梁廟) 자리였던 것. 착량묘는 착량지 부근에 위치해 있는데, 착량지는 [[당포 해전]] 당시 패주하던 왜군이 해협에 다리를 만들어 도주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.[* 착량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[[이순신|충무공 이순신]]의 [[사당]]인 착량묘가 있다.] 이 때문에 당시 일본인들은 조상들의 시체가 있던 곳 위를 지나갈 수 없다고 하여 다리를 짓는 대신 해저터널을 만든 것이다. 그러나 지금은 해당 위치에 통영대교, 충무교가 있다.[* 일본인들이 조상님 묘지 위에 다리 못 짓는다면서 기껏 해저터널 만들어 놨는데 거기다 다리를 놓고 심지어는 [[이순신]]의 호에서 이름을 딴 [[충무]]교라는 교량을 놓은 것도 모자라 해저터널마저 등록문화제로 박제해놓고 관광지 내지는 구경거리로 만들어 놨으니, 일본 입장에서는 [[사이다(유행어)|제대로 능욕당한 셈이다.]]] 원래 이름은 태합굴이었다. [[도요토미 히데요시]]를 가리키는 의미다. 처음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때엔 통영태합굴이라는 가칭을 썼다가 이름의 유래가 되는 사람이 사람인 만큼 논란이 되어 결국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. 내부에는 터널 역사 및 통영 관광 정보 전광판이 있다. == 관련 문서 == * [[가덕 해저터널]] * [[제주 해저터널]] * [[보령 해저터널]] [각주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해저터널, version=290, paragraph=3.1.1)] [[분류:경상남도의 터널]][[분류:해저터널]][[분류: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