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external/blogimg.goo.ne.jp/dde3ebc58d0a3d208d171dd74317384e.jpg]] 寛仁 / Tomohito [[1946년]] [[1월 5일]] ~ [[2012년]] [[6월 6일]] (66세) ~~[[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|미카사]] [[술집]] (三笠飲み屋)~~[* 그가 주당이라는 이유로 [[2ch]]에서 실제로 쓰이는 표현. 토모히토 친왕이 계승할 것으로 예정된 궁호 미카사노미야(三笠宮)와 같은 발음으로 토모히토 친왕 본인이 공식 인증했다.] [목차] == 개요 == [[일본]]의 황족. [[쇼와 덴노]]의 막내 동생인 [[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]] 친왕의 장남. [[나루히토]] 천황의 [[당숙]]. [[아소 다로]] 전 [[일본 총리]]--쇼군--는 그의 처남. 젊어서부터 [[수염]]을 기르고 다녀서~~[[멋지다 마사루|히게마니아]]~~ '''[[수염]] 전하(ヒゲの殿下)'''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.[* 반대로 다카히토 친왕의 막내아들인 [[노리히토]]는 형제들 중 유일하게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.] == 호칭 == [[장남]]인 관계로 미카사 궁가([[미야케#s-3]])의 당주 자리를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해 두 남동생 [[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]] 친왕이나 [[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]] 친왕과 달리 궁호를 받지 않았는데, 아버지 [[다카히토]] [[친왕]]이 100세가 넘도록 장수하는 바람에 먼저 세상을 떠나는 불효 아닌 불효를 저질렀다. 따라서 그의 정식 호칭은 그냥 '''토모히토 친왕(寬仁親王)'''이다. 일부 언론에서 '''미카사노미야 토모히토(三笠宮 寬仁)'''라고 쓰는 경우가 있지만, 궁호는 [[미야케#s-3|궁가]]의 당주 개인에게만 붙는 게 원칙이고, 토모히토는 미카사노미야의 후계자였기 때문에 궁호가 붙지 않는 게 원칙이다. 따라서 '미카사노미야 토모히토 친왕'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. 예전에는 친왕가를 이을 아들에게 '와카미야(若宮)'라는 칭호를 붙였으니, 굳이 궁호를 쓰겠다면 '미카사노와카미야(三笠若宮)'가 맞다. 아니면 '三笠宮家の寛仁親王(미카사 궁가의 토모히토 친왕)'이라고 쓰던지… [[히사히토]]의 경우도 마찬가지. 하지만 '와카미야'라는 표현은, 황실의 규모가 확 줄어든[* 1947년에 [[다이쇼 덴노]]의 직계 자손들을 제외한 방계 황족들과 [[화족]](귀족)들은 모두 평민으로 강등되었다. 이를 [[신적강하]]라 한다.] [[2차대전]] 패전 이후에는 거의 쓰지 않는다. 현재 [[궁내청]]에서는 궁가의 당주 여부에 상관없이 궁호를 빼고 그냥 '''XX 친왕 전하'''라고만 한다. 토모히토가 문제 삼았던 건, 당주인 아버지 [[다카히토]] 친왕이 멀쩡히 살아 계시는데 아직 후계자에 불과한 자신에게 궁호를 붙이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점. 그리고 황족에 대한 경칭은 '''"[[전하(호칭)|전하]]"'''인데, 이걸 놔두고 그냥 '''"XXさま(님)"'''이라고만 하는 현실. 참고로 [[2차대전]] 이후 언론에서 황족에 대한 경칭 사용이 많이 완화되어, 웬만한 매스컴에서는 공식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딱딱한 경칭보다 '''"XXさま(님)"'''의 사용이 보편화되어 있다. 물론 [[산케이신문]]을 비롯한 우파 계열에서는 꼬박꼬박 경칭을 사용한다. == 약력 == * 1946년 1월 5일 출생 * 1966년 1월 5일 성년식(만 20세) [[파일:external/fimg.freeml.com/l_efee8276428d20f86a150b03d591c2cb92ef2b85.jpg]] [[미쓰이]](三井) 클럽에서 열린 토모히토 친왕의 성년식 때 미카사노미야(三笠宮) 일가.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첫째 [[고노에 야스코]], 넷째 [[센 마사코]], 셋째 [[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]] 친왕, 어머니 [[유리코 비]], 막내 [[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]] 친왕, 둘째 토모히토 친왕, 아버지 [[다카히토]] 친왕. * 1968년 [[가쿠슈인]]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, [[영국]] [[옥스퍼드 대학교]]에 2년간 유학했다. 이 무렵부터 [[수염]]을 기르기 시작했다. * 1970년부터 2년간 [[1972 삿포로 동계올림픽]] 조직위원회에서, 1975년에는 오키나와 국제해양박람회 세계해양청소년대회 사무국에서 근무했다. * 자식이 없던 그의 막내 큰아버지 [[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]](高松宮 宣仁)[* [[다이쇼 덴노]]와 [[데이메이 황후]]의 3남. 자식이 없는 이유는, [[노부히토]] 친왕에게 [[동성애]]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.] 친왕의 영향으로, 장애인 복지 및 체육진흥관련사업에 관여했다. 또한 [[영국]]에 [[유학]]한 것이 계기가 되어 '''일영(日英) 협회''' 명예총재를 지냈고, 훗날 [[나루히토]] 황태자와 [[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]] 친왕이 영국에 유학하게 된 계기를 제공했다. * 총각 시절에 책도 썼다. ~~사소한 신변잡기 수준이지만~~ [[파일:external/run-run-kazu.cocolog-nifty.com/tomohito1.jpg]] <황족의 혼잣말> ~~표지부터 술잔을 들고 있다~~ * 2012년 6월 6일 오후 3시 35분, 다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. 향년 66세. 타계 당시 그의 황위계승 순위는 6위였다. 막내동생 [[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]] 친왕은 이미 2002년에 사망하여, 그의 후순위 계승자는 남동생 [[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]] 친왕뿐이었으나 문제는 그 요시히토 친왕도 독신인 상태에서 2014년 타계하면서 사실상 미카사노미야 가문 남성 계통은 사라졌고 최소 1세대~2세대 후면 절손 확정이 되어버렸다. == 결혼 == [[파일:external/blogs.c.yimg.jp/img_1?1371973903.jpg]] 1980년, 9살 연하의 [[아소 노부코]]와 결혼했다. 노부코는 아소 시멘트 회장인 아소 타카키치(麻生太賀吉)의 딸로, 그녀의 큰오빠가 바로 [[아소 다로]]이다. 위 결혼사진의 얼굴을 보면 확실히 아소 다로의 모습이 보인다. 노부코의 외할아버지는 [[요시다 시게루]]이며, 어머니는 아소 카즈코(麻生和子)이다. 카즈코의 외할아버지, 즉 시게루의 장인인 마키노 노부아키(牧野伸顯)[* 본래 [[오쿠보 도시미치]]의 차남인데, 마키노 가문의 [[양자(가족)|양자]]로 [[입양]]되어 '마키노 노부아키'가 되었다.]는 [[화족]]이자 정치인이었다. 1936년 [[2.26 사건]] 때 카즈코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군인들로부터 습격당했는데, 그들과 맞서 총격전까지 벌이면서 무사히 외할아버지와 함께 탈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. 고조할아버지는 근대 최초의 총리, 증조할아버지는 유력 정치인이었고 할아버지도 총리, 오빠도, 손위올케의 사돈어른[* 아소 다로의 아내는 [[스즈키 젠코]] 총리의 딸이다.]도 총리. 대단한 명문가의 딸이었던 셈. 게다가 본인은 황실로 시집가 왕자비가 되었다. 노부코는 쇼토(松濤) [[유치원]]에 이어 [[가톨릭]] [[미션스쿨]]인 [[세이신 여학원]] 초등과와 중등과를 졸업했고, [[영국]]으로 [[유학]]을 떠나 Rosslyn House College[* [[일본어]] 위키백과를 보면, Rosslyn House College를 신부학교(花嫁學校)라고 표현하고 있다. --[[신부수업]]을 가르치는 학교인 듯--]를 졸업했다. 귀국 후에는 자신이 다녔던 쇼토 유치원에서 [[영어교사]]로 근무했다. 사실 노부코가 17세이던 1972년에 26세의 토모히토 친왕이 청혼했으나, 시집가기에는 아직 어려서 8년 뒤에야 결혼했다. 두 딸 [[아키코 공주|아키코 여왕]](彬子女王)과 [[요코 공주|요코 여왕]](瑤子女王)을 낳았다.[* [[일본 황실]]에서 천황의 손녀까지는 내친왕, 증손녀부터는 여왕이라 부른다(남자는 친왕/왕). 토모히토 친왕의 두 딸 [[아키코 공주|아키코]]와 [[요코 공주|요코]]는 [[다이쇼 덴노]]의 증손녀이기 때문에 여왕 지위를 받았다.] === 자녀 === * 장녀 [[아키코 공주]]: 1981년 12월 20일생([age(1981-12-20)]살). [[가쿠슈인]] 대학 문학부 [[사학과]][* [[나루히토]] 황태자도 [[가쿠슈인]] 대학 [[사학과]]를 졸업했다.]를 졸업한 후 [[영국]] [[옥스퍼드 대학교]]로 [[유학]]을 떠나 일본 미술품 및 [[미술사]]를 공부, [[박사]]학위를 취득하였다. [[일본 황실]] 최초의 여성 박사이기도 하다. 그래서 토모히토 친왕은 생전에 큰딸 자랑을 하고 다녔다고. ~~팔불출~~ 2016년에는 고쿠가쿠인(國學院)[* [[아키코 공주]]의 사촌 여동생인 [[센게 노리코]]의 남편 센게 구니마로(千家國麿)가 고쿠가쿠인 대학 신도학과 출신. 구니마로는 졸업 후 [[신사(신토)|신사]]의 [[신관]](神官)이 되었다.] 대학의 특별초빙교수로 취임했으며, 강의도 하고 [[일본 문화]] 관련 단체의 일도 맡아 한다고 한다. * 차녀 [[요코 공주]]: 1983년 10월 25일생([age(1983-10-25)]살). [[가쿠슈인]] 여자대학 국제문화교류학부 일본문화학과를 졸업했다. 특기는 [[검도]]로, [[가쿠슈인]] 초등과 5학년 때부터 시작하여 [[가쿠슈인]] 여대 시절에는 [[검도]]부 부주장을 맡기도 했다. 이후로도 [[검도]] 관련 행사에 종종 참가했다. [[일본]][[적십자]]에서도 일했으며, 몸이 아픈 부모와 해외[[유학]] 중인 언니 [[아키코 공주]]를 대신하여 각종 공무를 하였다. [[파일:external/fimg.freeml.com/l_aa6ab0b32c4e1abc6edc03260abb1fb5ae85d373.jpg]] 젊은 시절의 [[노부코 비]]. 왼쪽의 아기가 차녀 [[요코 공주]], 오른쪽의 아기가 장녀 [[아키코 공주]]이다. === 결혼 생활 === 아내인 [[노부코 비]]와의 관계가 좋지못해 결혼 말년쯤부터 별거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. 아래에도 나와 있지만 토모히토는 [[노부코 비]]와의 별거 소문, [[알코올 중독]]과 [[여제|여성 천황]]과 여계 계승을 반대하며 "[[후궁]]을 들여서라도 아들을 낳아 남계로 계승해야 한다"고 주장하는 등, 그런 말만 들으면 꽤나 [[가부장적]]인 듯하다. 그러나 평소 똑똑한 큰딸 [[아키코 공주]]를 자랑스러워했고, 아키코 공주에게 "국민의 [[세금]]으로 공부하는 거니 열심히 해야 한다"고 충고하고, 아키코 공주도 아버지의 충고를 잘 따르고, 어머니 [[노부코 비]]를 대신해서 아버지의 장례식과 제사를 주관하는 걸 봐서는, 딸들과 사이가 나쁘진 않은 듯하다. 한편 [[노부코 비]]는 남편의 장례식과 제사에조차 참석하지 않았다. 이쯤되면 사실상 [[이혼]]한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던 듯하다. == 이슈메이커 == === 매스컴 노출 === [[1975년]]에는 심야 라디오 방송인 [[올나이트 닛폰]] DJ를 맡은 적이 있다. 지금까지도 황족으로서는 유일무이했던 일. 비슷한 시기에 [[쿠로야나기 테츠코|테츠코의 방]]이라는 유명 토크쇼에 출연해서는 "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[[담배]]를 피웠다"거나, "사촌형수 [[미치코 황태자비]]가 더 이상 아들을 낳지 않았으면 좋겠다"는 등의 말을 했다. 사실 사촌형수 이야기에 대해서는 "자기는 행운의 7을 좋아하는데, 본인 계승권이 7위 밖으로 밀려나기 싫어서"라는 농담조의 말이라는 식으로 넘어갔다.[* 토모히토 사후 미치코 황후가 남편과 같이 생전 퇴위를 해서 [[미치코 상황후]]가 되는 수백년 만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사실은 황실 내 미치코에 대한 견제와 [[궁내청]]의 무능함을 돌려서 비꼬았을 가능성이 크다. 본인도 황적이탈 하겠다고 제대로 폭발한 이력이 있고...] [[파일:external/ef81hokutosei.way-nifty.com/photo_6.jpg]] ~~왕자님은 DJ~~ === [[자위대]] 음악제 출석 === [[우익]]적 성향을 보여주듯, 1981년 11월에 [[자위대]] 음악제에 출석하겠다고 했다가 난리가 났다. 그간 [[일본 황실]]과 [[자위대]]는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이를 깨는 일이었으니까. 다만 군대사열과 다르게, 음악제는 개인홍보행사의 성격이 짙어서 토모히토 친왕 & [[노부코 비]] 부부를 행사 주빈이 아닌 특별 게스트로 하는 걸로 타협을 봤다. 그의 응접실에는 [[쇼와 덴노]]의 사진이 있고, 공개석상에서 "쇼와 덴노를 제일 존경한다"고 개드립치는 걸 보면 최소한 우파 입장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. 토모히토 친왕이 친하게 지내는 주변인물들을 봐도 마찬가지. 애시당초 토모히토 친왕의 아내 노부코 비의 오빠 토모히토 친왕에게는 손위처남이 우익계통의 정치인 [[아소 다로]]. === 황적이탈선언 === 1982년, "[[복지]] 사업에 힘쓰겠다"며 황적이탈 선언을 해서 일대소동을 일으킨 바 있다. ~~뭔 돈으로 복지사업을 하시려고?~~ 당시 밝힌 이유는 황족 신분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제약받는다는 것. 결국 무산되었기 때문에, 이 사건은 오랫동안 그의 유별난 성격 탓에 벌어진 해프닝으로 여겨왔다. 하지만 2014년 그의 남동생 [[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]] 친왕이 타계하면서, 이 무렵의 그와 연관된 새로운 증언이 나왔다. 요시히토 친왕의 [[가쿠슈인]] 동창생이 언급한 "국민의 세금으로 사는 주제에(税金で生活しているくせに)!!"라는 말을 듣고서 충격을 받아 그랬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. [[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]]가 [[가쿠슈인]] 초등과 시절 학교에서 들었다는 '''[[세금도둑]]'''이란 말을, 이들 형제도 들었다는 것.[* [[가쿠슈인]]에서 황족과 함께 수업을 듣는 고가쿠유(御學友)로 있을 정도면, 보통 집안의 자제는 아니다.] 그나마 활달한 성격의 토모히토 친왕은 좌충우돌하면서 이런저런 이슈를 만들어 내는 식으로 표현을 하곤 했는데, 이게 폭발한 것이 1982년 '''황적이탈선언'''이라는 것. 물론 [[일본 황실]]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게 쉽게 될 일은 아니었기에, 어디까지나 일종의 시위로 보는 게 타당하다. 이때 [[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]] 친왕도 심적으로는 여기에 동조했으나, 내성적인 성격 탓에 잠자코 있었다고. 어차피 이들 형제는 황위계승순위에서도 밀려나 있었기에, 황실이라는 울타리를 많이 버거워했던 모양이다. ~~거대한 스트레스 덩어리~~ 그 소동 이후로도 "젊고 멀쩡한데도 국가로부터 생계보조나 받고 산다"는 자학 멘트를 날린 적도 있다. ~~이것도 누구한테 듣고서 내뱉은 말로 보인다~~ === 여계 인정 반대 === [[나루히토]] [[황태자]]에게 아들이 없자 대안으로 제시된 여계(女系) [[미야케#s-3]] 인정에 반대한 바 있다. [[천황]]의 여계 계승에 반대해 [[후시미노미야]] 등 구황족의 복적을 주장했다. 이 문제만큼은 나루히토 황태자를 제외한 다른 황족들도 보수적 입장에 있다고 보인다. 딸 아키코 공주도 여계 천황에 반대하고 [[아키히토]] 덴노도 다른 문제와 달리 이 문제만큼은 보수적인 입장인 게 현실. 다만 왕실에서 보기 드물게 [[우익]] 성향을 대놓고 드러냈다. 덧붙여 '''[[후궁]]을 두어서라도 아들을 낳아야 한다'''고도 (자긴 대 환영(…)이라고) 주장했다. --아내 [[노부코 비]]와 진작에 별거 상태인데, 황족이라 함부로 이혼하기도 그러니까 [[후궁]]이라도 두고 싶었나 보다-- --[[일본 황실]]의 하렘물화-- 덕분에 당연히 신나게 까였다.(…) 당시 [[일본 내각총리대신]]이었던 [[고이즈미 준이치로]]는 여계 계승을 추진했는데, 2006년 [[히사히토]] 친왕이 태어나면서 유야무야되었다. === 조선학교 학생과의 싸움 === [[2007년]] [[뉴욕타임스]]와의 회견 때 [[조선학교]] 학생과의 인~~악~~연을 언급해서 생긴 일. [[한국]]에서는 이 때문에 그를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. [[가쿠슈인]] 재학 당시 [[야마노테선]]을 타고 등하교했는데, 조선학교 학생들은 가쿠슈인 [[교복]]을 보면 매일같이 항상 덤벼왔다고 한다. 그래서 한일에서는 "[[재일교포]] 학생들과 패싸움한 걸 참 잘도 자랑스럽게 떠든다"고 비난한다. 그의 학창시절인 [[1960년대]] 초반이면, 일본에서 좌파학생운동이 절정에 치닫고 [[재일교포 북송]]에 한창이던 때다. ~~[[우익]] 성향을 갖게 된 배경?~~ 한편 이 때에 '''"황실은 거대한 스트레스 덩어리"'''라고 발언해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. [[야스쿠니 신사]]참배와 [[자위대]] 음악회 출석도 그렇고, 아버지인 [[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]] 친왕[* [[다카히토]] 친왕은 생전에 가명을 쓰고 사령부 참모로 [[중국]] 전선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며, 그때 중국에서의 [[일본군]]이 저지른 각종 만행을 직접 보았기에 전쟁이 끝난 이후에 "[[난징대학살]]이나 [[관동대지진]] 당시 학살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"는 발언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하는 등, 전쟁 중 잔학행위에 대해서 전면 부정하는 극우파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주었다.오죽하면 이때 해당 발언 때문에 '빨갱이 왕자'라는 별칭이 붙고, 한동안 미카사노미야 저택 근처에서 극우들이 항의시위를 했을 정도.]에 빗대면, 그야말로 [[호부견자]]라고 할까. === [[알코올 중독]] === [[타모리]]의 회고담에도 등장하는데, 젊은 시절부터 말술로 유명했다고 한다. 부부가 [[알코올 중독]]이라는 소문이 있었고, 토모히토 친왕은 2007년부터 '''자신이 [[알코올 중독]]임을 인정'''한 바 있다. ~~알코올 중독자인 토모히토입니다~~[* 실제로 이렇게 인사했다(…).] [[부부]]관계는 좋지 않아서, 진작부터 별거상태라는 소문이 있었다. 장례식 때도 아내 [[노부코 비]]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, 두 딸 [[아키코 공주]]와 [[요코 공주]]만 나와 울고 있었다. 언론에서는 "몸이 안 좋아서 그렇다"고 넘어갔지만. [[파일:attachment/토모히토/ayo.jpg]] 토모히토 친왕의 장례식에서, [[상복]] 차림의 장녀 [[아키코 공주]](왼쪽)와 차녀 [[요코 공주]](오른쪽). == 투병과 사망 == [[파일:attachment/토모히토/ayo2.jpg]] 토모히토 친왕의 장례식에 참석한, 사촌 형 [[아키히토]] 덴노와 [[미치코 황후]] 내외. [[파일:attachment/토모히토/ayo3.jpg]] [[나루히토]] 황태자와 서양식 상복을 차려입은 [[마사코 황태자비]], 두 딸 [[아키코 공주]]와 [[요코 공주]]. 1991년부터 식도암으로 투병하다가 2012년 세상을 떠났다. 10년 동안 대수술을 '''14번'''이나 받았다. 2010년경에 아예 성대 적출수술로 목소리를 잃고, 목에다 스카프를 감은 채 전자 인공후두로 목소리를 냈다.[* <[[사우스파크]]>의 등장인물 네드 거블란스키가 차는 게 이것이다.] 황족은 병원비를 국비지원해서 망정이지,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가정이 박살났을 것. 결국 미카사노미야 가문의 3형제가 모두 아들을 낳지 못하고 부친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, 아버지 [[다카히토]] 친왕도 2016년 10월 27일 100세의 나이로 작고하면서, 결국 부계로 이어지는 적통이 끊기고 말았다. 큰딸 아키코 공주는 시집가지 않고 평생 왕족으로 살며 미카사노미야 가문을 지킬 계획이라고 하며, 작은딸 요코 공주는 언니처럼 [[독신]] 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고 있다. 토모히토 친왕이 죽은 후로, 두 딸은 아버지가 생전에 하던 [[야스쿠니 신사]]참배와 [[자위대]] 행사 참석 등의 우익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. == 관련 문서 == * [[아키히토/가족관계]] [[분류:일본의 친왕]][[분류:1946년 출생]][[분류:2012년 사망]][[분류:하야마정 출신 인물]][[분류:식도암으로 죽은 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