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영국의 근대 철학자]][[분류:영국의 역사학자]][[분류:영국 남성 작가]][[분류:전통주의자]][[분류:에든버러 대학교 출신]][[분류:1795년 출생]][[분류:1881년 사망]] [[파일:xpaHB91.jpg]] '''[[토마스|Thomas]] [[칼라일|Carlyle]]''' (1795년 12월 4일 ~ 1881년 2월 5일) [목차] == 개요 == [[영국]] [[스코틀랜드]]에서 태어났으며. 철학자, 사학자 및 비평가로 이름을 남겼다. 대자연은 신의 의복이고 모든 상징, 형식, 제도는 가공의 존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경험론 철학과 공리주의에 도전했다. [[에든버러 대학교]] 명예총장이었으며, 유명한 저서로는 《영웅숭배론》, 《[[프랑스 혁명]]》 등이 있다. 전기 작가로는 [[프리드리히 대왕]]과 [[올리버 크롬웰]]을 다룬 책도 알려져 있다. 당대의 세습[[귀족]]을 비판했다. 그는 귀족을 "하는 일이라고는 [[잉글랜드]]가 낸 세를 마음껏 소비하고 잉글랜드의 자고사냥이나 한다"고 비아냥거리고 혈통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귀족을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.[* [[알랭 드 보통|Alain de Botton]],'불안',정영목 역,은행나무,2011,p105] 일반인들에겐 그의 이름이나 작품보다도 "셰익스피어는 [[인도]]와도 바꾸지 않겠다.(혹은 인도는 포기할 수 있으나 셰익스피어는 포기할 수 없다.)" 란 말로 유명하며, 이 유명한 구절은 바로 《영웅숭배론》에 나온다. 하지만 이 문장은 번역이 와전된 형태이다. 원 문장은 다음과 같다. >'Indian Empire will go, at any rate, some day; but this Shakspeare does not go, he lasts forever with us.' >(직역)-'[[인도 제국]]은 어쨌든 사라지겠지만, 셰익스피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,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.' == 일화 == 《프랑스 혁명》[* [[찰스 디킨스|Charles Dickens]]는 1859년 11월에 쓴 프랑스대혁명을 다룬 작품 《두 도시 이야기》의 저자 서문에서 "칼라일의 훌륭한 책이 보여준 철학에 뭔가를 더 보태기를 바랄 수는 없겠지만, 그 무시무시한 시절을 이해하는 데 쓰이는 대중적이고 생생한 매체들에는 뭔가를 보태고 싶었다"라고 썼다.]이란 작품을 쓸 때의 일화가 유명하다. || 그는 그리 넉넉치 못한 형편에서도 수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《프랑스 혁명》이란 책의 초고를 완성했다. 그리고 친구이자 철학자 [[존 스튜어트 밀]]에게 보내 이 방대한 양의 원고의 감수를 맡겼는데, 밀이 자리를 비운 사이 하녀가 그 원고를 쓰레기인 줄 알고 '''몽땅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'''... 친구 밀에게 이 사건을 전해 들은 칼라일은, 물론 심정이야 증오의 말로 책 한권을 가득 채워도 분이 풀리지 않았겠지만, 그를 너그럽게 용서하는 편지를 보내고, 새로이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한다. || 3년이 지난 후 1837년, 마침내 완성된 프랑스 혁명을 선보이고,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 크게 알려져 성공하게 되었다는 얘기이다. 진정한 [[대인배]]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