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이스라엘의 도시]][[분류:하계패럴림픽 개최도시]][[분류:옛 수도]][[분류:이스라엘의 세계유산]] [include(틀:아시아의 수도)] [include(틀:이스라엘의 세계유산)] ||||<tablealign=right><tablebordercolor=#0038B8><bgcolor=#00bfff> {{{+2 텔아비브}}}[br]{{{+1 [[히브리어]]: תֵּל־אָבִיב }}} || ||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" [[파일:Tel-Aviv-Jaffa_logo.jpg|width=320]]}}} || ||||<#00bfff> 엠블럼 || || 면적 || 176km^^2^^(텔아비브 구) || || 국가 || [[이스라엘]] || || 인구 || 약 141만 명(텔아비브 구) || || 건립 || [[1909년]] [[4월 11일]] || || 링크 || [[https://www.tel-aviv.gov.il/en/Pages/HomePage.aspx|텔아비브 시청 홈페이지]]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[[이스라엘]] 본토의 [[지중해]] 바닷가에 위치한 이스라엘 [[최대도시]]로서 1948년부터 1977년까지 이스라엘의 [[임시수도]]였다. [[6일 전쟁]]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정부는 [[예루살렘]]을 재건하는 [[도시계획]]을 수립하여 1968년부터 1992년까지 국회의사당과 중앙정부청사와 대법원 및 복지부처와 공안기관(공안부+경찰청+소방청+교도청)과 이스라엘은행을 차례로 이전했다. 1977년에 이르면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은 [[중국]]의 [[상하이]]와 [[베이징]] 또는 [[브라질]]의 [[상파울루]]와 [[브라질리아]], [[나이지리아]]의 [[라고스]]와 [[아부자]]처럼 경제중심과 정치중심으로 상호 역할을 분담하게 되었다. [[파일:israel_telaviv_district.jpg]] 그러나 국내외의 정세가 불안하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의 [[총력전]]에 대비하여 경제부처와 방위기관(국방부+육군청+해군청+공군청) 및 [[공기업|국유기업]]과 [[증권거래소]]는 여전히 텔아비브에 있다. 또한 대부분의 국가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[[외교공관|각국 대사관]]은 여전히 텔아비브 시내에 있다. [[https://www.cbs.gov.il|이스라엘 중앙통계국]]의 2018년도 이스라엘 통계초록(Statistical Abstract of Israel 2018)에 따르면, 텔아비브 구(區)의 인구는 약 141만 명이다. == 상세 ==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Tel_Aviv_Skyline_(night)_-_2.jpg]] [[파일:external/2015.icimeeting.com/Beach-1.jpg]] [[파일:external/asset-tilburg.nl/TELAVIV.jpg]] [[파일:external/www.armapartners.com/banner-telaviv-sm.jpg]]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Flickr_-_Israel_Defense_Forces_-_IAF_Flight_for_Israel's_63rd_Independence_Day.jpg]] [[파일:external/cmxhub.com/Tel-aviv-Gibor-Sport-005.jpg]] [[파일:external/wikitravel.org/Tel_Aviv_banner.jpg]] [[파일:external/d3n8a8pro7vhmx.cloudfront.net/tel_aviv_16x9.jpg]] 도시 자체 인구 수는 43만여 명이며 그중 90%는 유대인이다. 광역권은 그 10배에 가까운 385만여 명이 밀집해 있다. 게다가 [[예루살렘]]의 특성상 이스라엘 국적 기업 본사, 다국적 기업들의 지사들은 대부분 텔 아비브에 자리잡고 있다. 지금은 관광지이지만 언제 전쟁터로 돌변할 지 모르는 예루살렘에 기업 본사를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당연하다. [[벤 구리온 국제공항]]이 있어 [[이스라엘]] 관광객 및 [[성지순례]]를 하러 온 종교인들이 이스라엘에 오면 1순위로 들르는 곳이다. == 역사 == ||<-3><table align=right><bgcolor=#000> '''[[유네스코|{{{#fff 유네스코}}}]] [[세계유산|{{{#fff 세계유산}}}]]''' || ||<-3><bgcolor=#fff> [[파일:attachment/unesco-worldheritage.png]] || ||<|4> 이름 || 한국어 || 텔-아비브 화이트시티[* – 모더니즘 운동] || || 영어 || White City of Tel-Aviv[* – the Modern Movement] || || 아랍어 || مدينة تل أبيب البيضاء[* – الحركة العصرية] || || 프랑스어 || Ville blanche de Tel-Aviv[* – le mouvement moderne] || |||| 국가·위치 || [[이스라엘]] 텔 아비브 지구 || ||<-3> [include(틀:지도,장소=Kikar Dizengoff, 너비=100%, 높이=224px)] || |||| 등재유형 || [[세계유산#s-3.1|문화유산]] || |||| 등재연도 || [[2004년]] || |||| 등재기준 || (ii)[*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, 기념물 제작,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], (iv)[*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,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,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] || |||| 지정번호 || [[http://whc.unesco.org/en/list/1096|1096]] || [clearfix] 원래는 이 근처에 있는 야파(Jaffa)[* 가톨릭 성서에서는 야포로, 개신교 [[성경]]에서는 '욥바'라고 부른다. 십자군 시대와 [[대항해시대]]에도 나오는 야파가 이 도시이다.]라는 고대 이래의 항구도시[* 구약성서 [[여호수아]]에도 등장한다.]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대인들이 1906년부터 시작한 가정(Ahuzat Bayit) 운동이 기반이 되어, 1909년에 유대인 66가구가 조개 껍데기를 가지고 자그마한 마을을 건설한 것이 텔 아비브의 시작이다. 1910년까지 도로망과 상하수도, 유대인 학교, 66가구의 집 등을 지으며 '텔 아비브'라는 이름을 붙였다. 이후 각지에서 유대인 인구가 몰려들면서, 1차 세계대전 중에는 텔 아비브와 야파 일대의 유대인들에게 오스만 정부의 추방령이 내려지기도 했으나, 오스만 제국의 패망-멸망으로 곧 철회되었고 팔레스타인 지역이 [[영국]] 지배에 놓이게 되었다. 이때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아랍인과 갈등이 고조되었으며, 1921년 1차 야파 사태가 일어나자 유대 인구의 상당수가 텔 아비브로 모여들면서, 2천여 명(1920)의 마을이 단 5년만에 3만 4천명(1925)의 도시로 바뀌었다. 1948년 이스라엘의 초대 정부가 텔 아비브에 세워졌으며, 텔 아비브와 야포의 경계 분쟁이 계속되자 아예 1950년에는 텔 아비브에 야포를 합쳐 텔 아비브라 불렀다. 이후 야포의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텔 아비브-야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. 어찌 되었든, [[제1차 세계 대전]], [[제2차 세계 대전]], [[중동전쟁]] 등을 통해 이스라엘 전체가 불안불안한 와중에도 텔 아비브만큼은 공격을 잘 받지 않았고,[* 100% 안전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'''수도 예루살렘에 비해서는 텔아비브는 그나마 안전했다.'''] 덕분에 초고층 빌딩이 몰려들고 이스라엘 주민들도 대부분이 경제 활동을 위해 모이는 등 번성하는 곳이 되었다. 하지만 2016년 1월에 이스라엘 아랍인의 총기난사로 3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치는 사태가 터졌다. 6월에도 팔레스타인인의 총기난사가 또 벌어져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당하여 텔 아비브도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. 게다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쏘는 로켓이 틈만 나면 떨어지다보니 대피령도 자주 내리는 판국이다. 야파가 역사가 유구한 항구임에도 불구하고 볼 만한 역사 유적이 별로 없는 편인데, 십자군 시대의 기독교 유적들이 유대인 입장에선 절대 즐거운 기억이 아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방치하거나 밀어버리고 그 위에 새 건물을 지은 게 많아서 그렇다. [clearfix] == 여담 == 지명의 유래는 [[에제키엘]] 3:15에 나오는 '텔아비브'(델아빕)이다. 물론 이름만 같고 위치는 서로 전혀 다르다. 델아빕은 [[이라크]]나 [[시리아]]쯤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. 이곳을 연고지로 하는 [[축구팀]]으로 [[하포엘 텔아비브 FC]]와 [[마카비 텔아비브 FC]]가 있으며, 두 팀은 각각 이스라엘 사회의 진보층과 보수층의 응원을 받으며 치열한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. 두 팀의 [[더비 매치]]는 텔아비브 더비라 불리며 이스라엘에서 가장 치열한 스포츠 라이벌전으로 여겨진다. ~~그리고 경기마다 나치, 히틀러, 가스, 하마스, 폭탄테러 드립이 터진다.~~ [[폴아웃 시리즈/연대표|폴아웃 시리즈]]에서는 2053년경 핵 공격을 받는 도시로 나온다. [[2000년]]부터 [[인천광역시]]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. 특이하게도 지중해성 기후답지 않게 가장 더운 달이 7월[* 일반적으로 동아시아를 제외하면 태양의 남중 고도 특성상 북반구에서 가장 덥거나 따뜻한 달은 7월이다.]이 아닌 '''8월'''이며, 바닷가에 바짝 붙어있는 특성상 강수량이 적은 7, 8월에도 습도가 꽤 되는 편이다. 또 6월보다 9월이 더 더운 편이다. 이스라엘이 물가가 비싼 나라인만큼 텔 아비브도 세계에서 물가가 비싼 도시에 속한다. 다만 숙박비는 생각만큼 비싸지 않다. 여행경비를 절약하고 싶으면 텔아비브 해변의 숙소[* 시설이 엉망진창인 대신에 가격이 저렴하고 생각 외로 밤거리에도 안전하다.] 위주로 돌아다니고 식사나 쇼핑은 러시아계 유대인 거주구역에서 해결하는 것을 권한다.[* 영어가 잘 안통해서 답답하긴 한데 뭐 밥 사고 쇼핑하는 정도야 뭐...] 물가가 비교적 싸면서도 안전하고 깨끗하다. 현재 [[동성애]]에 대해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중동 지방에서 [[성소수자]]에 대해서 가장 개방적인 도시이다. 이스라엘 내 다른 도시인 예루살렘이나 하이파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문화를 가진 도시이기도 하다. 2012년 조사에서는 게이 문화로 유명한 [[암스테르담]]과 [[샌프란시스코]]를 제치고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03&aid=0004544505|게이 필수 여행지 1위]]로 뽑히기도 했으며, 매년 중동 및 이스라엘 최대의 게이 [[프라이드 퍼레이드]]가 열리고 있다. 이에 대해 이스라엘의 문제를 덮기 위한 [[http://mitr.tistory.com/696|핑크워싱]]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, [[http://www.huffingtonpost.kr/2017/06/08/story_n_17009336.html|이에 대한 반론]]도 참조. 한국인 관광객에게 대체적로 친절한 편이다. [[하레디]]들이나 휴가 나와서 술에 취한 [[이스라엘군]] [[말년병장]] 정도만 조심하면 된다. 잘 사는 이스라엘의 대도시치곤 대중교통이 상당히 열악한 편이다. 일단 대도시라면 으레 있는 지하철도 없고 트램이나 경전철 또한 없다.[* 지하철은 [[하이파]]에 깔려있고, 경전철은 [[예루살렘]]에서 다닌다.] 대체로 버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버스의 상태도 썩 좋지 못한편. 심지어 현지인들도 테러의 위협때문에 버스를 그다지 신뢰하진 않는다. [[이스라엘]]에 있는 수많은 건물들은 일일히 검사를 시행하지만 버스는 그 기사가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검사도 할 수 없어서 그런지 테러의 표적이 쉽기 때문이다. 현재 2021년 개통을 목표로 경전철이 건설되고 있으며 [[http://www.itrailnews.co.kr/mobile/article.html?no=33706|지하철 건설 계획도 있다]]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