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2차 세계대전/전투기 에이스 11~20위)] [[파일:BMW 328.jpg]] [[분류:1914년 출생]][[분류:1950년 사망]] [목차] == 개요 == '''테오도어 바이센베르거'''(Theodor Weissenberger : 1914년 12월 21일~1950년 6월 11일), [[독일 공군]]이 배출한 슈퍼 [[에이스(전투조종사)|에이스]] 조종사로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적기 208대를 격추시켜 항공전 사상 격추수 11위를 기록했다. == 초기 == [[독일 제국]]의 [[헤센]]주 뮐하임 암 마인에서 태어난 테오도어는 어렸을 때 국가적인 장려를 받던 항공 스포츠 클럽에 가입해 [[글라이더]]로 비행 훈련을 받았고, 조종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글라이더 조종사로 나서게 된다. 이렇게 민간 항공업계에 입문한 그는 [[1936년]]에 공군에 지원 입대했다. [[전투기]] 조종 교육을 마친 그는 [[부사관]] 계급으로 [[1941년]] 제77전투항공단([[JG 77]])에 배속되어 구축전투기 [[Bf 110]]을 몰게 된다. 테오도어 [[상사(계급)|상사]]는 1941년 10월 24일에 [[노르웨이]] 상공에서 처음 적기를 격추했고 이후 둔중한 중전투기를 몰면서도 23대나 격추시켰는데, 이 전과는 전체 구축전투기 에이스 중에서도 [[에두아르드 트라트]], [[베르너 티에르펠더]], [[에곤 알브레히트]], [[롤프 칼드락]] 다음으로 5번째에 해당되는 엄청난 것이다. 이 공로로 [[1942년]] 9월에 [[독일 십자훈장|독일 황금십자장]]을 수여받고 단발 전투기 부대인 제5전투항공단([[JG 5]])으로 옮겼다. 거기서도 적기 38대를 격추하고 1942년 11월 13일 [[철십자 훈장|기사철십자장]]을 받았다. == 독소전에서 == 전쟁 동안 375회 출격하여 208기를 격추시킨 그의 전과는 대부분 [[동부전선]]과 북빙양 방면에서 기록하였으나 [[서부전선]]에서도 33대의 적기를 격추했다. 서방 [[연합군]]을 상대로 올린 격추 기록 33건 중 8건은 제트전투기인 메서슈밋 [[Me 262]]로 격추한 것이라고 한다. [[러시아]]에서 급격히 상승세를 그리는 그의 신들린 격추 행진은 당대 어느 에이스보다도 더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. 그도 그럴 것이, 그는 이 시기에 하루만에 적기 5대 이상을 잡는 1일 에이스를 11회 이상 기록했기 때문이다. == 본토 방공전 == 1943년 6월, 승진한 바이센베르거는 JG 5의 제7비행중대장으로 임명되었다. 112번째 적기를 격추한 뒤인 1943년 8월 2일 [[철십자 훈장|곡엽 기사철십자장]]을 수여받았다. 9월에는 JG 5의 제6비행중대장으로 옮기고 1944년 3월 JG 5의 제2비행단 지휘관으로 승진했다. 1944년 6월 JG 5의 제1비행단을 지휘하여 [[노르망디]] 방면으로 침공하는 연합군을 막아내는 방어전투를 수행했다. 노르망디에서만 적기 25대를 격추하면서 1944년 7월 25일에는 드디어 200번째 승리를 거두게 된다. 소련 공군 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대로 평가받는 영미 공군을 상대로도 그의 격추 페이스는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었다. 이후 [[Me 262]]로 기종 전환 훈련을 마친 뒤 코만도 노보트니라 불리던 제7전투항공단([[JG 7]])의 제1비행단장으로 임명되었다. 이후 1945년 1월에 [[소령]]으로 진급하는 동시에 JG 7의 사령관이 되었고 그 상태에서 더 이상의 출격을 못하고 패전을 맞았다. 전후에는 [[카레이서]]가 된 그는 1950년 6월 11일 [[뉘른베르크]] 서킷에서 [[BMW]] 328로 [[GP2|포뮬러 2]] 경주를 벌이던 도중에 코너에서 충돌하는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. [[분류:에이스 파일럿]][[분류:제2차 세계 대전/군인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