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동로마 황후]] ||||||||||||<:><tablealign=center><#800080> '''[[로마의 역대 황제#s-3|{{{#ffffff 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}}}]]''' || || [[아모리아 왕조]] ||<|2> {{{+1 ←}}} || [[아모리아 왕조 ]] ||<|2> {{{+1 →}}} || [[마케도니아 왕조]] || || 87대 [[테오필로스]] || 88대 [[미하일 3세]][br]'''(섭정 [[테오도라]])''' || 89대 [[바실리오스 1세]] || [[동로마 제국]]의 [[황후]]. 남편인 [[테오필로스]] 황제가 죽은 후 842년부터 855년까지 아들 [[미하일 3세]]를 섭정하였다. 대단한 미녀였다고 한다. 남편 테오필로스가 십대일 때 단독 황제가 되어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신부 간택을 위해 전국에서 후보를 불러모았는데, 시어머니인 유프로시니의 맘에 들어 간택되었다. 금슬도 괜찮았는지 7남매를 보았다고 한다. [[파일:2331.jpg]] 성상파괴종식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이콘. 성 테오도라 황후. 19세기 그리스. 남편인 황제는 물론 총대주교까지 성상 파괴론자였음에도 섭정이 되자 정치력을 발휘하여 성상 파괴령을 종식시켰다(843년). 그러나 이로 인해 성상 파괴파인 [[바오로파|파울리키아파]]를 박해하게 되었고, 박해를 피해 도망친 이들이 동방의 이슬람 제국으로 넘어가면서 동부 전선의 긴장이 높아지는 결과도 초래하였다. 아들 미하일 3세가 성년이 되자 며느리감을 짝지어 주었으나 미하일 3세는 어머니가 택한 신부를 맘에 안 들어했으며[* 훗날 황제가 되는 [[바실리오스 1세]]의 아내와 관계하였다] 점차 어머니의 영향력을 벗어나려 하였다. 결국 858년 황제는 손위 외삼촌[* 즉 테오도라의 오빠다.] 바르다스와 손잡고 일종의 [[친위쿠데타]]를 일으켜 테오도라를 실각시켰다. 물론 조용히 물러날 테오도라가 아니어서 원로원에게 국가 재정 상황을 낱낱히 까발리는 뒤끝을 작렬해주셨다. 사후 테오도라의 유해는 [[코르푸]]에 안치되었는데, [[4차 십자군]]으로 콘스탄티노플 시내의 영묘들이 모두 파괴됨으로써, 몇 안 되게 시신을 제대로 찾을 수 있는 황제 및 황후 중 하나에 속한다.